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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오디션 열풍을 로토다

이종호/논설위원

전 국민을 연예인 만든
대한민국의 오디션 열풍
신기루 좇는 착각 아니길


대단한 나라 대단한 국민이다. 한국의 오디션 열풍 이야기다. 지난 해였던가. 미주 한인사회에 살짝 그 바람이 불었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지난해 케이블TV의 '슈퍼스타 K'가 불을 지피고 기름을 부었다. 중졸의 보일러공 출신 허각을 일약 국민스타로 만든 바로 그 프로그램. 지원자가 무려 134만명이었다. 올해는 한 술 더 떠 200만명은 몰릴 것이란 전망이다. 비슷한 포맷의 TV프로그램도 우후죽순 10개나 생겼다.

이쯤 되면 전 국민의 연예인화라 아니할 수 없다. 영화나 연극 뮤지컬의 배우나 가수를 선발하기 위한 방법이 오디션이다. 그것이 이젠 국민 오락이 된 것이다.



재능 있는 원석을 캐거나 세계적인 가수를 발굴하기 위한다는 것이 명분이란다. 누구에게나 스타가 될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있다는 것도 내세운다. 실제로 '끼' 하나로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도 준다. 이것이 착각의 시작이다.

1999년 하버드대학에서 실험을 했다. 검은 셔츠와 흰 셔츠를 입은 팀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흰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만 세도록 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열심히 셌다. 그러나 동영상이 끝난 뒤 정작 실험 참가자들에게 물어본 것은 "고릴라를 보았느냐"는 질문이었다. 동영상 중간 쯤에 고릴라 분장을 한 학생이 약 9초에 걸쳐 화면 중앙으로 걸어온 뒤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치고 걸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 대상자 중 절반이 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유명한 '주의력 착각' 실험이다. 이 실험은 '사람은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본다'는 속설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상황에 따라 누구든지 눈 뜬 장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다.

요즘 많은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연예인이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이것을 놓칠 리 없다. 인터넷 검색창에 오디션이라는 세 글자를 한 번만 쳐 보시라. 스타를 열망하는 이들의 눈길을 유혹하는 온갖 문구들이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스타가 될 것만 같다. 바로 내 이야기니까. 나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으니까. 착각의 심화다. 그때부터는 고릴라가 떼로 지나가도 보이지 않는다.

노래 춤 연주 몸매 만들기 등 본격적인 스펙쌓기에도 나선다. 아이를 스타로 키우겠다며 아예 어릴 때부터 열정적으로 뒷바라지 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 좁은 땅에 실용음악 학원만 1100여개나 성업 중인 이유다.

한국에 몰아친 오디션 열풍은 전 국민을 '끼돌이 끼순이'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디션 열풍 뒤에 숨겨진 음습한 곰팡내는 별로 맡지 못한다. 시청률이라는 지상 과제 앞에 내몰린 방송사들의 무한 욕심은 도전자들의 감동 스토리조차 철저히 기획되고 계산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까지 갖게 만든다.

단 3분의 오디션을 위해 전국을 누비는 '연예인 고시생'만 100만명에 이른다는 한국이다. 그들에게 오디션은 앞뒤로 막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비상구일지도 모른다. 한 장 남은 신분상승이라는 급행표를 거머쥐기 위해 너도나도 '착각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려는 것만 같다.

그들은 외친다. "예스 아이 캔(Yes I can)!" "아이 캔 두 잇(I can do it)!"

훌륭한 구호다. 그러나 꿈은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성과 합리가 배제된 자신감은 무모함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오디션 열풍은 또 하나의 로토다. 미망(迷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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