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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인권운동하는 이아라 이 감독 "예술은 세계평화의 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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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1/04/29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1/04/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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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예술로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다큐멘터리‘저항의 문화’ 중에서.
비폭력, 예술로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다큐멘터리‘저항의 문화’ 중에서.
그녀의 피부는 거무스름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선탠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오래 전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세계의 화약고’ 중동으로 갔다. 이란에서 1년여를 살았고 레바논, 튜니지아, 파리, 버마, 브라질, 콜롬비아 등지에서 힙합가수, 낙서미술가, 무용가, 시인 등을 만나 그들의 비폭력 저항을 담아왔다. 그 결과가 다큐멘터리 ‘저항의 문화(CoR, Cultures of Resistance)’다. 브라질에서 한인부모 사이에 태어난 이아라 이(45) 감독은 지난해 5월 지중해의 가자 지구로 향하는 구호함대에 타고 있던 중 이스라엘의 공격을 담은 비디오를 UN에서 공개했던 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카메라를 든 아마조네스’ 이 감독은 지난 27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저항의 문화’ 뉴욕 첫 상영회를 열고, 자신의 45세 생일을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보냈다. 이씨는 이어 시카고, 보스턴, 뉴멕시코에서 상영한 후 모잠비크·스페인·그리스·러시아·터키·이디오피아·카시미르·콜롬비아·아일랜드·인도·토고 등지로 대장정을 떠난다.

“난 희망을 가진 유목시민”

-당신은 누구인가.


“한인 부모를 두고 브라질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내 마음은 팔레스타인 여성이다. 난 다른 문화에 대해 배우고, 유대감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집을 바꾸어가며 살고 있는 세상의 유목시민(nomadic citizen)이다. CoR은 세계의 변화추구자들과 협동하며 차이점을 인내하고, 더 이해하는 것을 증진하는 희망으로 갈등하는 나라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을 매우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철학은 이 세상을 재미난 곳으로 지키기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영화 시작에 한국어 해설(“저항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 어떤 것을 만들어야 되지요)”은 누가했나.

“훌륭한 한국 시인 고은씨다.”

-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나.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하자 화가 나서 중동으로 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사태를 보기로 결심했다. 난 거기서 살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과 만나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저항의 문화’가 태동했다. 이후 2006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폭격할 당시 레바논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는 나라 안에서 무분별한 폭력을 목격하면서 나의 생각은 영원히 바뀌었다. 그토록 터무니없는 살인의 힘 앞에서 난 사회정의에 바치고, 폭력으로 맞서는 것을 버리기로 했다. 특히 창의적이고 비폭력적인 저항을 기록하고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다큐 감독들은 흔히 좋은 이야기를 발굴해 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내 목표는 그게 아니다.”

-어느 나라를 담았나.

“20여개국 이상에서 촬영했다. 영화엔 11개국으로 편집됐다. 영화엔 무수히 많은 가수, 연주자. 무용가, 그리고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콩고·르완다·리베리아·이란·팔레스타인·레바논·시리아·콩고·나이지리아·브라질·콜롬비아·버마 등등이 나온다.”

-제작 기간은.

“프로젝트엔 2003년부터 전념해서 3년간 촬영했다. 문화적 다양성을 찬미하기 위해 각국 15개 언어가 나온다. 편집하는 일이 매일 악몽같았다. 아랍, 포르투갈어, 버마어 등등... 통역과 함께 작업했다. 영어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쓰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남반구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도록 10개 국어로 자막도 만들었다. 장편 다큐로 만든 다음에도 각국에서 놀라운 사회운동가들을 만나 그들에 관한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이 단편들은 ‘저항의 문화’ 프로젝트의 확장 선상에 있다.”

만행 폭로로 국제사회 비난

-자유함대에서 촬영한 비디오도 삽입했나.

“영화는 당시 이미 편집이 끝나가는 상태라 빠졌다. 우린 수많은 나라를 돌며 찍은 걸 73분 내에 담아야 했다. 잘린 단편들이 상당히 많다. CoR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해 에너지와 시간을 희생하는 세계 예술가들과 변화추구자들을 위한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지난해 UN에서 비디오 상영 후 반응은.

“이스라엘 해군의 가자 자유함대 공격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국제사회의 분노와 규탄이 있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그 프로젝트에 가담해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가 되면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구촌 연대감/단결의 중요성을 입증한다. 점령지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거의 매일 인권탄압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인권과 국제법을 증진하는 것에 참가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가자 자유의 함대와 우리가 이스라엘 정부의 공격을 기록한 것은 얼마나 그 나라가 야만적인지, 테러 상황을 실습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의 시민들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으며, 변화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 우린 미 정부에서부터 대기업이나 주류 언론 네트워크까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시민 자신들이지 변화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

-폭로한 후 미국의 반응은.

“미국에 돌아올 때마다 ‘그 방’에 불려가 취조당했다. ‘종교는 뭐냐’‘어떤 조직에 가담해 있냐’ 등등 질문한다. 내 이름은 컴퓨터에 요주의 인물로 입력됐다. 이스라엘에 처음 갔을 땐 바로 추방됐고, 다음엔 수갑이 채인 채 감옥에 있다가 쫓겨났다. 이런 게 부시 행정부 아래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오바마 시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당시 자유함대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 심지어는 프랑스 국적 소유자도 미국에 못들어 온다.”

-폭로 후 신변의 위험을 느끼지 않았나.

“난 내 주변사람들의 안전에 종종 걱정했다. 그리고, 특히 위험한 지역에서 촬영할 땐 카메라맨과 스탭의 안전에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안전에 대해선 늘 잊어버리고 있다가, 지난 후에야만 뒤늦게 깨닫곤 했다. 국제법을 방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두려움이 우리의 활동을 저지할 수는 없다. 우린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가족이 걱정 안했나.

“지난해 이스라엘에 구금됐을 때 우리 가족은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스라엘이 언제 널 암살할 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인권, 평화와 정의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가족은 내 열정을 지지하고, 내가 택한 길을 받아들이고 있다.”

민초 방식으로 상영

-촬영현장에는 몇 명이 동원됐나.


“나라마다 달랐다. 대부분은 나의 전 영화에서 함께 일했던 베테랑이나 각 나라에서 가이드를 맡았던 로컬 영화인들과 작업했다.”

-나라를 옮길 때마다 무슨 짐을 쌌나.

“가능하면 가볍게 다녔다. 최소한의 옷과 영감을 주는 책. 그리고 물론 영화 장비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각 나라의 관료주의와 부딪힌 것이다. 각국의 검열, 정보국, 관세 및 장비 운송 등이 항상 골칫거리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경이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은 특권이었기에 그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결국 무척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배급은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전체 과정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난 이제 영화감독(filmmaker)이 아니라 배급자(filmbooker)다. 반이스라엘적인 내용 때문에 할리우드에선 이미 문을 닫아버렸다. CBS에서도 인터뷰는 했지만, 방영은 못하겠다고 하더라. 웃기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세계의 사회운동가들과 진지한 시민의 지원으로, 민초의 방식으로 상영회를 열고 있다. 이 영화엔 문화적 다양성 경축하고 싶었기에 15개 언어가 나온다. 편집하는 동안 매일 악몽 같았다. 아랍, 포르투갈어, 버마어 등등... 자원봉사 통역을 붙여 작업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쓰는 건 아니다. 남반구의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도록 10개 국어로 자막도 만들었다. 이제 미국에서 투어를 시작했다. 우리는 올 가을 한국에서 상영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학교에서 교재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영화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젊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비디오 온 디맨드(VOD)와 DVD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항의 문화’에서 얻은 교훈은.

“멜로드라마처럼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영화가 인간성에 관한 나의 신념을 재건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난 인류가 자기파멸적인 성향이 있는 것같은 절망의 시간도 있었다. 세계를 돌면서 특출나게 창의적이며, 재미나고, 용기있으며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목표는 이 영화가 이들이 가져다주는 희망의 센스를 전달하는 것이다.”

“세상을 알려면 여행하라”

-왜 인권운동에 가담하게 됐나.

“90년대 테크놀로지가 인류의 예술관 문화, 그리고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담은 다큐 몇편을 만들었다. 호평을 받으면서 난 사회정의를 위한 예술과 문화에 끌리게 됐다. 아떻게 순수예술을 불공정과 불평등, 전쟁과 탐욕으로 뒤엉켜있는 세계에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2001년 탈레반의 지배에서 고통받다가 피난온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이전에 무시되어왔던 여성권의 비극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단편 ‘보그카의 아래(Beneath the Borqa)’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이 두개의 전쟁을 벌이고, 다국적기업의 폭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난 중동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이스라엘군의 부차별한 폭력을 목격했다. 난 여행기간을 늘이면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어느 특정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처에서 인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첫번째 자각으로 개인적으로 중동 뿐만 아니라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에 대해 환기를 시키기 위해 이를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남들은 아파트와 연봉, 옷과 저녁식사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세상에 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고개를 돌릴 수 있겠는가?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인권운동을 하는데 주류 언론과 유튜브나 인터넷의 역할은.

“인권 위반이나 국내 테러리즘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기위해 온라인 플랫폼과 소셜네트워크 등을 포함 우리가 모든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게된 것은 무척 중요하다. CoR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우리가 정보를 공유하고, 전략을 토론하며, 행사를 홍보하고, 유튜브에 올려져있기도 한 우리의 단편을 볼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다. 주류 언론은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이 있지만, 개인 하나하나가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힘이 세진 것 같다. 우린 시민언론(citizen journalism), 폭로주의자, 조사언론을 육성해야 한다.”

-젊은 이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세상을 알아라. 여행은 좋은 시작이다. 마이애미나 캘리포니아로만 가지 말라. 콩고, 수단도 좋고, 르완다, 나이지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가서 직접 목격하고, 느껴보라. 연민을 갖게될 것이다. 여권을 가진 미국인이 극소수다. 미국인들은 고립해 살고 있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팝아티스트 제프 쿤이 맹위를 떨치는 오늘날 이 영화의 의미는.

“예술이 그 시대의 정치적 표현이자 반대성향의 수단으로 항상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비평가들은 종종 작품을 그 예술가의 우상적인 개인주의에 치중한다. 그들은 예술이 사회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곤 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수많은 예술가들과 소통하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

-영화가 세계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서 평화와 정의를 증진시키는 노력에 참가시키는 것이다. 난 영화에 등장하는 훌륭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그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다음 영화는.

“‘저항의 문화’의 주제는 억압에 대한 창의적인 레지스탕스다. 그리고, 끝이 없으며, 73분짜리 영화 속에 요약되어질 수 없다. 난 사회정의를 위한 캠페인을 증진하는 것에 더욱 몸을 바치고 있다. CoR은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네트워크이자, 운동이며, 지속되는 프로젝트다.”

☞이아라 이는

사웅파울루 남쪽의 파라나에서 패션업체 ‘미스터 이’를 운영하는 부모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10대에 사웅파울루국제영화제에서 어씨스턴트와 프로듀서로 일하다가 1989년 뉴욕으로 이주해 뉴욕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이후 테크노팝에 대한 다큐멘터리 ‘모듈레이션’, 인공물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인조쾌락’을 연출했다. 새너제이 하키팀 ‘샤크스’의 전 소유주이자 영화제작자인 남편 조지 건드 3세와 카이피린냐재단을 창립했다. 2008년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추진하는 과정에 참여했으며, 평양기술대학의 이사직도 맡고 있다. 여동생 주사라 이는 뉴욕의 패션디자이너, 주피라 이는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브라질 레스토랑 ‘카사’를 운영하고 있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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