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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

[LA중앙일보] 발행 2011/05/12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1/05/11 19:03

이종호/논설위원

열심히 올라간 성공 사다리
잘못된 방향이라면 어쩌나
바로 놓여있는지 먼저 살펴야


축록자 불견산(逐鹿者 不見山). 직역하면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당장 눈앞의 잇속만 챙기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는 경구로 흔히 쓰인다.

고 1 때였던가. 한담을 좋아하셨던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들었던 말인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때 받았던 감동이 꽤나 컸던 것 같다. 하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말뜻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으니 미욱했던 지난 날이 참람할 따름이다.

잘 아는 선배가 있다. 유학을 와서 박사가 된 후 사업의 길로 들어선 선배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더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이런 저런 투자를 받았지만 때가 좋지 못했다. 불황의 그림자와 함께 잘 나가던 사업까지 기우뚱했다. 결국 평생 일궈온 사업체를 놓아야 했다.

선배는 무척 힘들어 했다. 기가 빠진 듯 초췌한 얼굴이 선배가 겪었을 신고의 시간을 말해주었다. 선배는 신앙생활에 힘을 쏟았고 새로 운동도 하며 세월을 견뎠다. 뒤뜰에 채소밭도 일구고 가족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말도 들려왔다.

최근 만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알고 보니 내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이더라고."

요즘 선배의 얼굴은 잘 나가던(?) 그 시절 못지않게 넉넉하고 좋아 보인다. 이런 것이 '축록자 불견산'의 교훈이리라.

그러나 아둔한 우리는 직접 겪어보기 전엔 잘 모른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만 간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올라가려고만 한다. 그렇게 해서 끝까지 올라갔다 치자. 그런데 올라가서 보니 그 사다리가 원하지 않는 쪽의 벽에 걸려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스티븐 코비 박사는 20세기 최고의 리더십 이론 권위자로 꼽힌다. 지금은 고전이 되다시피 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그는 성공의 조건으로 관리능력과 리더십의 조화를 꼽았다. 관리 능력이란 효율성을 따지고 단기 목표의 달성 여부만 중요시 한다. 그러나 리더십은 최종 목적지를 살핀다. 열심히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다리가 원하는 장소에 올바로 걸쳐져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 이 두 가지는 함께 가야한다. 비즈니스든 인간관계든 심지어 전체 인생을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집착한다. 뜻대로 안 된다고 불평하고 왜 내 인생은 맨날 요 모양 요 꼴이냐며 투정부린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성공으로 여기니 당연한 일이다. 그 질곡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성공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비록 큰 좌절을 맛봤지만 그로 인해 훨씬 더 값진 삶을 새로 발견해 낸 선배처럼 말이다.

나이 먹을수록 제대로 섬겨야 할 '세 분'이 있다고 한다. 직분(職分) 본분(本分) 안분(安分)이 그것이다. 직분은 맡은 일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본분이란 사장은 사장답게 학생은 학생답게처럼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마땅한 도리를 하는 것이다. 안분은 분수에 맞게 안분지족하며 너그럽게 처신하는 것이다. 사슴 쫓는 자의 교훈이 일깨우는 지혜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살아남기 위해 사슴도 쫓아야 한다. 하지만 때론 멈춰 서서 산세도 살펴야 한다. 그래야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고 정작 봐야 할 것도 놓치지 않는다. 고은 시인은 이를 단 세 줄의 짧은 시로 썼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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