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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떠나 사는 한인들 모습은…

사진집 '교포' 출간하는 신디 황

소설가 이창래 교수, TV 앵커 주주 장, 영화배우 대니얼 대 김, 패션디자이너 벤자민 조, 리얼리티 쇼 ‘서바이벌’ 우승자 권율, 클래식 앙상블 안트리오…

그들은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맨해튼 그래머시파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사진작가 신디 황(37·사진)을 만난 한인들은 스튜디오의 하얀 벽을 배경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2004년 11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유명인사들만 황씨의 카메라 앞에 섰던 것은 아니다. 세탁소 주인, 초등학교 학생, 입양 한인, 풋볼선수, 태권도 사범, 그리고 입양한인들과 혼혈 한인들도 모델이 됐다. 이들은 모두 한반도를 떠나 살고 있는 한인들이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 중국, 덴마크, 프랑스, 필리핀, 쿠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240여명의 한인이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포즈를 취했다.



황씨는 올 8월 12일 이들의 전신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담은 사진집 ‘교포(Kyopo)’를 출간한다. 이와 함께 올 8월 12일부터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뮤지엄 계열 미초상화갤러리(The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열릴 7인전 ‘초상화의 현재, 미국의 아시안: 조우의 초상화들’에 참가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살 반 때 메릴랜드주 로크빌로 이민온 황씨는 메릴랜드대 경영학과 중퇴 후 뉴욕으로 이주했다. FIT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후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독학으로 사진작가가 됐다. 2009년부터는 베이징에 살며 이민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의 별명은 한국이름 조현과 미국이름 신디를 합친 ‘씨조(CYJO)’다.

-두껍고 화려한 책이다. 출간에 오래 걸렸다.

“7년간 품고 있다가 출산한 내 아기와도 같다. 내 아기를 누구에게도 입양시키지 않을 것이다!”

-모델 선정 작업은

“우연한 만남이나 친구들의 추천 등이나 난 조사를 하거나 에이전트나 페이스북을 활용하지 않았다. 나는 학자가 아니라 예술가다. 내 책은 메시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사진을 보면서 메시지를 형성하기를 허락하는 프로젝트다.”

-모델들이 거의 차렷 자세에 무표정이며, 전신이다. 왜 이 스타일로 결정했나.

“패션 비즈니스에서 일하면서 모든 것이 상업적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선 개인들이 세밀하게 기록되고 관찰되기를 원했다. 보는 이들이 각 개인을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문득 생각해냈고, 그대로 가기로 했다.”

-촬영 전 의상에 관한 의논했나.

“안 했다. 그들에게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오라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오자마자 친구와 함께 와서 촬영한 판사는 스니커 차림이었다. 에스터 채(배우)는 몸에 스카프 한장만 걸쳤다. 스티브 번(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자신의 티셔츠를 찢더니 어깨 너머로 던진 후 몸을 돌려 전면 자세를 취했다. 서혜경(피아니스트)씨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즐기고 열정으로 사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으며, 정현경(유니온 신학대) 교수는 매우 경쾌하면서도 긍정적인 분위기로 임했다.”

-촬영 당시와 지금, 누구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했나.

“린다 최 베스터가드(건축가)는 처음에 이 그룹에서 가장 한국문화와 먼 인물이었다. 덴마크에서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미미했다. 뉴욕의 건축회사에 6개월 인턴십을 하러 와서 27뇬만에 처음 조상의 문화와 가장 친밀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불고기도 먹었고… 린다는 일란성 세 쌍둥이였는데, 다른 두 자매도 덴마크의 농가에 입양됐다. 그들 모두 친부모를 만나고 싶은 열망이 없었다. 그런데, 뉴욕에 머물던 린다는 생각을 바꾸어 한국에서 친부모와 모두 상봉하게 됐다.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잊혀지지 않는 모델은.

“몇 사람을 든다면, 9.11 때 남편을 잃은 후 방글라데시에서 고아원을 시작해 아이들을 돕고 있는 패트리샤 한. 세라 최는 혼자서 프라더 윌리스 신드롬(Prader Wilis Syndrome)을 앓고 있는 아들과 세 딸을 키우면서 장애아 가족을 도울 수 있도록 알래스카의 정책을 바꾸었다. 한흑 혼혈인 조나단 립케는 한국에서 힘들게 자라 열한살 때 브루클린의 전 민권운동가 가족에 입양됐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처음엔 배신감을 느끼다가 자신의 문화로 복귀하는 것은 정말 인상적인 이야기다.”

-재미난 모델은.

“코미디언 바비 이는 홍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서 올 누드에 양말만 신었다. 물론 포즈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책에 담고 싶었지만 빠진 인물은.

“워싱턴 D.C.의 교육감을 지낸 미셸 이와 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다.”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은.

“몇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몇 가지만 든다면, 첫째 경험에 의해 개인이 변형된다는 것, 둘째 역경을 헤쳐나가겠다는 열정과 용기 그리고 결단력, 셋째 한인과 미국인 바깥 다른 문화를 가진 개인들의 국제적인 면면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계속 커지고 있는 지구촌 의식과 커뮤니티 센스나 조상과의 다양한 관계 및 어떻게 그들 모두 특별한 방식으로 맞추어왔나 등을 배웠다.”

-자신의 정체성도 찾았나.

“다른 관점에 노출될 수록, 나 자신은 더 인식하게 되고 확고하게 된다.”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에게 책을 바친다고 했는데.

“1976년에 이민온 아버지(황세웅)는 서울대 수학과 출신으로 안정된 삶을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기회의 땅으로 온 이민자를 대표한다. 아버지는 언어장벽에 부딪히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희생을 많이 하셨다. 아버진 2000년 돌아가셨다. 우리가 이민오지 않았더라면, 이 책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채수창)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여름에 실종되셨다고 한다. 돌아가셨는지, 납치됐는지 알 수 없다. 당시 북한에서 지성인들을 잡아갔다고 들었다. 우리 집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자랐다. 키가 무척 크고, 마르신 분으로 위엄이 있어 보였다. 할아버지가 사라진 후 외할머니가 4명의 자식을 키우셔야 했다. 외할아버지의 수호로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내게 코리안아메리칸이란…

-“기회를 의미한다. 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추구했다.”(이진옥 교수)

“아웃사이더가 무엇인지 알기에 ‘약자(underdog)’을 응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커뮤니티가 있기에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앵커 주주 장)

“난 다른 아시안들로부터 ‘바나나 혹은 트윙키(흰 크림으로 차 있는 노란 케이크)’라는 말을 들어왔다.”(성악가 앤드류 갱개스타드)

“미국은 나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은 대학 졸업 후 미국사회 속에 잘 들어갔다. 난 이에 만족하고 있다.”(이정규 세탁소 운영)

“치열한 두 가족 사이에서 가끔 싸우면서도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매튜 세종 양, 학생)

“난 한인이냐 미국인이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난 내 자신일 따름이다. 인간으로 느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의무에 충실하는 것이다.(패트리샤 한, 의류디자이너)

-‘교포’ 프로젝트에서 발췌-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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