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뉴욕대 우등생이 켄터키로 간 까닭은…

'아이언 셰프' 요리사 에드워드 이의 인생 파노라마

1995년 뉴욕대학교 영문과 우등 졸업 후 출판사에 취직했던 한인 청년 에드워드 이(38)는 적성에 맞지 않는 사무실에서 뛰쳐나온다. 그의 첫사랑은 문학이 아니라 요리였고, 첫 요리선생은 할머니였다. 브루클린 부엌에서 할머니 어깨 너머로 용의주도하게 관찰했던 소년은 용돈이 생기면 맥도널드로 달려가지 않았다. 대신, 식품점에서 재료를 사다가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보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맨해튼 5애브뉴 트럼프타워 안에서 버스보이로 빈그릇을 치우면서 식당 수업을 시작한 그는 이탈리아 요리사 프랭크 크리스포를 사사한 후 몇 군데 뉴욕식당의 키친에서 수련했다. 1998년, 스물다섯살 때 맨해튼 다운타운의 망해가는 중국식당 자리에 퓨전 레스토랑 ‘클레이’를 열었다. 한창 잘 나가던 이 식당은 9.11이 터지자 휘청거렸고, 급기야 문을 닫고 만다.

2004년 대도시에 염증을 느꼈던 에드워드 이의 선택은 미 최대의 경마대회가 열리는 켄터키주의 루이빌.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이 아니라 컬트식당 ‘610 마그놀리아’의 주방장 겸 파트너로 요리사 인생의 두 번째 챕터를 시작했다.

2009년 10월 미 요리 전문지 ‘구어메이’는 이씨의 요리철학을 14페이지에 걸쳐 대서특필했다. 지난해 11월엔 푸드 네트워크의 인기 요리게임쇼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서 우승해 미 전역에 얼굴을 알렸다. 5월엔 ‘미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우는 2011 제임스비어드재단상(JBFA, James Beard Foundation Awards) 최우수 남동지역 요리사상 후보에 지명됐다. 이씨는 지난 9일 링컨센터 에버리피셔홀에서 열린 JBFA 시상식에 양복 차림으로 금의환향, 1년 차인 아내 다이애나 더콜즈씨와 레드 카펫을 밟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를 넘어서

-JBFA 남동부(조지아·켄터키·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테네시·웨스트버지니아주) 지역최우수 요리사 후보에 오른 소감은.

“굉장한 영광이다. 나의 식당에서 내가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고 있다는 신념을 인증받는 것이자, 내 동료들로부터 존중받는다는 의미가 크다.”

-수상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 있는 ‘랜턴’의 안드레아 리우싱이었다. 수상 못해서 아쉬웠나.

“후보자들 모두 친구들이거나 내가 함께 요리했던 사람들이라서 우리 중 하나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난 올해 처음 후보에 올랐기 때문에 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상을 받으려면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시상식이 길었다. 무슨 생각을 했나.

“샴페인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미 최우수 요리사상은 호세 안드레아스에게 돌아갔다. 워싱턴 D.C.에서 ‘미니 바’을 운영하는 안드레아스는 스페인식 타파스(반찬 사이즈의 작은 요리, small plates)를 유행시킨 주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안드레아스는 미국에서 가장 재능이 있는 요리사 중 한명으로 스페인 음식을 미국에 퍼트리는데 생애를 바친 인물이다.”

-최근 미국에 ‘작은 요리’가 확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미국은 스페인, 멕시칸, 코리안 등 기타 지구촌 요리의 다양성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요리가 더 이상 프렌치나 이탈리안이 아닌 것이다.”

-‘모모푸쿠’의 데이빗 장은 벌써 JBFA 3관왕을 석권했다. 데이빗에 대한 의견은.

“모모푸쿠 식당에 가봤고, 하루 저녁은 데이빗과 함께 요리도 해봤다. 그는 무척 창의적이다. 다른 요리사들이 해온 것을 추종하지 않고 신선한 비전으로 모든 것을 생각한다. 내게 매우 영감을 준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미 요식업계에서 어떤 장단점이 있나.

“코리안이라는 것에 대한 오해가 있다. 내가 조리하는 모든 것이 한국음식에 기반한다는 것은 오해다.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한국음식에 관한 관심이 상당히 많아지고, 한국 재료를 남부의 향취로 섞는 나에 대해 사람들이 매우 호기심을 갖고 본다.”

지난해 11월 이씨는 ‘아이언셰프’ 호세 가르세스에게 도전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스패니시 요리 전문 가르세스는 필라델피아와 시카고 등지에 6개의 식당을 운영하는 스타 요리사. 그날의 비밀 재료는 쇠고기 혀와 넙치 볼따귀로 코스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대전 이름도 ‘Battle of Tongue and Cheek(*’실없는 투쟁’이라는 2중 의미도 지녔다.)’로 화제가 됐다.

-‘아이언셰프’에서 우승한 비결은.

“한인이기에 자라면서 혀를 먹은 적이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늘 혀를 먹었다. 그러나, 이 재료들은 오랫동안 조리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웠다. 그래도 난 무척 신이 났다. 관건은 얼마나 부드럽게 조리하느냐였다.”

(이씨의 조리팀은 켄터키산 수수가루, 옥수수가루와 버번 등으로 남부의 맛을 가미했고, 신선한 옥수수와 사워크라우트(양배추 절임)를 비밀병기로 준비해왔다. 그리고, 남부 바비큐소스에 흑마늘과 옥수수빵을 넣고, 쇠 볼따귀를 압력솥에 삶아 조리해내는 총 5코스로 심사위원들의 입맛을 사로 잡은 것이다.)

-TV 출연이 식당에 영향을 주나.

“TV는 항상 사업에 도움이 된다. 특히 나처럼 ‘아이언 셰프’에서 이긴다면 말이다. 6개월 전이었는데도, 사람들은 여태까지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식당에 오는 것은 TV쇼 때문이 아니라 음식 때문이다.”

“켄터키는 제 2의 고향”

2001년 에드워드 이는 자신의 맨해튼 식당 클레이에서 루이빌에서 온 비지니스맨을 만나 컬트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979년 에디 가버라는 이름의 요리사가 빅토리안 건축양식의 마굿간을 개조해 운영해온 ‘610 마그놀리아’ 얘기다. 이씨는 2002년 봄, 미 전역 음식 여행길 켄터키에 들렀다. 그때는 연중 가장 분주한 시즌인 ‘켄터키 더비’ 주간이었다.

이씨는 그 식당 키친에 들어가 요리를 도와주었고, 지역 농산물을 애지중지하는 가버는 이씨를 마음에 쏙 들었다. 요리를 끝낸 날 밤, 가버는 직원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했다. “이 친구가 에드워드다. 모두들 그가 말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무뚝뚝한 가버의 말투 속엔 깊은 신뢰가 깔려 있었다. 그 즈음 가버는 식당 후원자였던 비지니스맨 브룩 스미스 회장에게 식당을 넘길 요량이었다. 가버는 이씨를 요리사 겸 파트너로 적극 추천하게 된다.

2004년 이씨는 ‘610 마그놀리아’의 요리사 겸 공동대표가 되며, 켄터키는 그에게 ‘제 2의 고향’이 된다. 이씨는 로컬의 유기농작물에 유럽의 조리방식을 결합한 뉴아메리칸 요리를 표방하며 아시아와 프렌치풍으로 채색했다.

-모두들 뉴욕으로 오는 요즘에 왜 루이빌로 갔나.

“15년 전 프랑스에 갔을 때, 모든 이들이 파리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며 파리에서 먹지 말라고 했다. 진짜 프랑스 요리는 브레세, 아네시, 프로방스 등 파리 밖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돌아온 후 난 대도시 밖에서 내 삶을 찾기로 결심했다.”

-뉴욕 밖에서, 루이빌에서 일하는 장단점은.

“루이빌에 있으면, 난 또 하나의 식당이 아니다. 시 전체가 나를 지원한다. 거기에 대해 무척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명백히 작은 도시라 사업차 출장이 아니면 그다지 많은 사람이 여행하지는 않지만, ‘610 마그놀리아’에서 식사를 하기위해서 루이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610 마그놀리아의 메뉴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나.

“메뉴는 나 자신을 반영한다. 한국인으로서의 성장, 뉴욕에서 트레이닝하고, 남부요리를 사랑하는 것이 모두 혼합되어 당신은 내 요리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새롭게 혼합하고 실험하는 걸 좋아한다. 음식은 창의적인 예술이다. 사람은 조금씩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

-610 마그놀리아의 메뉴 중 한식풍이 있나.

“메뉴는 1주 마다 바뀐다. 배와 고추로 조리한 생 스캘롭과 ‘갈비찜과 옥수수가루 요리’ 등이 대표적이다.”

(3년 전부터 핼로윈 전야에 ‘610 마그놀리아’에선 ‘지옥의 만찬(Inferno Dinner)’이 벌어지고 있다. 하드코어 음식광들이 모여 지옥처럼 매운 맛으로 무장한 코스 요리를 한껏 먹고 즐기는 가학적인 저녁식사다. 그 중엔 ‘김치가 들어간 양고기갈비 타코’도 끼어 있었다.)

-켄터키 더비 주간엔 바빴겠다.

“한해 중 가장 바쁜 주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와서 우리 식당에서 먹는다. 더비에 참가한 마주(馬主) 여러 사람들이 우리 식당으로 왔다. 올해의 우승마인 ‘애니멀 킹덤’의 주인도 우리 식당에서 우승 파티를 했다. 굉장했다.”

-말에 돈을 걸었나.

“난 너무 영리해서 하지 않는다.“

-여행사 직원처럼 루이빌 자랑을 한다면.

“버번이 있고, 경마에 컨트리 햄이 있는 곳. 살기에 훌륭한 곳임은 물론이다.”

브루클린의 다양성이 내 자산

-자랄 때 동네에 인종적 다양성이 있었나.

“학교에 흑인, 히스패닉, 유대인, 아시안, 인디안 등 모든 인종이 있었다. 그런 다양성과 함께 자라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다. 어렸을 때 친구네 집에 가서 세계 여러나라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가 요리를 잘 했나.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엄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음식을 하셨지만, 부모님 모두 매우 바쁘셔서 최근에 들어서야 매일 요리를 하신다. 난 집에 갔을 때 엄마가 새로운 요리를 만드시는 걸 보는 것 항상 좋아한다. 요리는 함께 산 할머니에게 많이 배웠다.”

-무슨 요리를.

“어릴 때 용돈이 생기면 패스트푸드점으로 가는 대신 재료를 사다가 할머니 감독 하에 요리를 했다. 지금 610에선 남은 재료로 피클을 만든다. 할머니와 함께 당근, 오이, 가지를 절였던 기억이 난다.”

-문학도였다. 영향을 준 책이 있었나.

“많지만, 이창래씨의 첫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는 무척 영감을 주었다. 이창래씨는 창의적인 분야에서 성공한 최초의 코리안아메리칸 남성이었고, 나에게 요리의 꿈을 추구하도록 격려해주었다. ‘항복자들(The Surrenders)’은 내가 최근 5년간 읽은 책 중 최고였다.”

(이씨는 올 3월 루이빌의 서점 ‘카마이클’에서 이창래 프린스턴대 교수와 토론회를 했고, 오래된 친구 사이처럼 문학과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창래 교수는 이름난 와인광이자 요리광이다.)

-왜 문학을 전공한 후 요식업계로 뛰어들었나.

“문학을 사랑했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더 넓게 청중과 소통하며 연결되고 싶었다. 항상 요리하는 것이 좋았는데, 어느 날 문득 요리가 취미일 필요가 있을까, 요리는 내 인생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작은 마을에서 아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교수가 되는 것보다는. 난 주목받는 것을 좋아한다.”

-문학도로서 요리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를까.

“요리는 이야기다. 좋은 메뉴는 마치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과 같다. 거기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다. 좋은 메뉴는 사람을 놀라게하며, 생각하도록 만든다. 요리는 재료를 어휘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며, 여러 코스가 있는 이유는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무척 걱정하신 것 같다. 요리사는 무척 힘든 삶이며,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한다. 이제 부모님은 요리사가 얼마나 보상을 주고 있는 지를 알게 되셨다. 근면성은 스몰비지니스를 열심히 해오신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다.”

-유럽에 가서 요리를 배웠나.

“프랑스로 가서 리용, 디종과 아네시 등 도처에서 일하면서 미국보다 더 강도 높은 프랑스의 클래식 음식문화에 대해 배웠다.”

-식당 ‘클레이’를 통해 배운 것은.

“1998년 모트와 스프링스트릿에 열었을 때 내 나이 25세였다. 모두가 미쳤다고 말렸지만, 난 5년 간 잘 운영했고, 회계에서 배관까지 경험하며 식당업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런 경험 이후 난 무엇을 하던 두려울 것이 없었다.”

-9.11의 영향을 받았나.

“그렇다. 그 때문에 클레이를 폐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 간 장사가 썩 잘됐는데, 몇 주 만에 그 동안 저축했던 것을 모두 잃었다. 그때가 바로 뉴욕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한국 정부가 한식 홍보에 관심이 많다. 조언을 한다면.

“유기적으로 진행되도록 내버려둘 것. 한인이던 외국인이던 요리사들이 실험을 하도록 격려할 것. 미국에서 한식은 많은 모양새와 정체성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흥미로운 것이다. 그것이 한식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변화에 저항하지 말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요리사는.

“정직성과 두려움과 치열함과 확신감과 역사성을 갖고 요리하는 사람. 그런 요리사는 매주 바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을 댈 수 없다.”

-뉴욕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피자, 리틀이태리의 롬바르디 피자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한식은.

“비빔 냉면.”

-가장 좋아하는 뉴욕의 한식당은.

“감미옥이며, 김치가 그만이다.”

-좋은 식당이란.

“오늘날 좋은 식당은 200년 전과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약간의 건강과 활력과 신나게 만들어주고, 사람들에게 삶의 여정에서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것이 아닐까.”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최후의 만찬은.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음식 생각은 하지않을 것이다.”

☞에드워드 이=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살 때 뉴욕으로 이주. 브루클린 스타렛시티에서 성장. 뉴욕대학교 영문과 우등 졸업. 이탈리아 요리사 프랭크 크리스포를 거쳐 이스트빌리지의 식당에서 수련. 1998년 아시안 퓨전 식당 ‘클레이’ 개업. 2002년 프랑스에 5개월간 체류하며 프랑스 요리를 배움. 2004년 켄터키주 루이빌로 이주 ‘610 마그놀리아’ 대표 겸 주방장이 됨. 2010년 6월 요식업 ‘염 브랜드사’ 매니저 다이안 더콜즈와 결혼. 11월 푸드네트워크 ‘아이언셰프’ 우승. 2011년 5월 제임스비어드재단상 남동부지역 최우수 요리사 후보. 켄터키와 인디애나에 마그놀리아 농장 운영.

☞‘610 마그놀리아’ 이모저모
▶55석
▶오픈 시간=목·금·토요일 저녁 오후 6시. 예약 필수. 나머지는 프라이빗 파티.
▶메뉴=켄터키의 농부와 장인들에게 헌사하는 메뉴는 계절 따라 매주 바뀐다. 3코스 정식($50), 4코스($60), 와인 페어링에 $50 추가.
▶프라이빗 파티=6코스($100) 칵테일 뷔페($50)
▶와인 스튜디오=와인 테이스팅에서 딤섬 시식, 패션용품 세일까지 각종 행사.
▶인페르노 디너=핼로윈 전야에 열리는 매운 맛 코스, 지옥의 만찬. 610 Magnolia, Louisville, KY 40208.(502-636-0783) www.610magnolia.com.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