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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따라잡기-8] 'Jobsless Apple'

잡스 떠난 애플 '잃어버린 10년' 암흑기

Jobsless Apple

스티브 잡스가 NeXT와 Pixar라는 두 회사를 붙잡고 인생 역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이 잡스없는 애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란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잡스가 공식적으로 애플을 떠난 해는 86년. 되돌아온 해는 97년. 이 10년 사이 지구촌엔 전방위적인 '디지털 쓰나미'가 몰려왔다. 애플 신화를 모방한 무수한 벤처 기술 업체들의 거품과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가 펼쳐졌고 사업가와 소비자 모두 컴퓨터 세상을 환영했다. 컴퓨터는 불완전했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기 충분했다.

빌 게이츠 등장 천하평정

쳐다만 봐도 겁나는 컴퓨터를 자녀를 위해 할 수 없이 사야만 했던 부모들이 있었고 또 컴퓨터 학원과 길거리 PC Shop이 넘쳐났다. 1000-2000달러의 컴퓨터를 구입하긴 했지만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이유도 모르고 또 업그레이드를 해야만 했다. 툭하면 먹통으로 변하는 컴퓨터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컴퓨터는 원래 그런거야"라는 시대정신을 만들어냈다.



컴퓨터는 초유의 스피드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과 경제 사이클을 만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윈도즈라는 운영체제 하나로 천하를 평정했다. 전세계 90%이상의 컴퓨터에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가 작동했고 컴퓨터 관련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는 모두 "윈도즈 호환"이란 반짝이는 딱지가 붙었다. 여기서 잡스가 애플에 계속있었다면 아니 잡스의 코가 1센티만 낮았더라면 이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빌 게이츠의 시장을 내다보는 탁월한 비전과 성공 노력을 폄하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가정속에서 잡스 없는 애플이 얼마나 허망하게 세월을 낭비했는가를 엿 볼 수 있다. 76년 애플(Apple) II와 84년 매킨토시는 세상을 선도하는 컴퓨터였고 애플은 컴퓨터 선도 기업이란 자랑스런 브랜드 가치를 축적할 수 있었다. 모두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잡스가 매킨토시 개발에 매진한 80년대 초 애플 이사회와 경영진은 회사가 좀더 상장기업답게 성숙한 회사로 거듭나야한다고 믿었다. 이런 기조는 결국 잡스와의 결별을 예고한 것과 다름없었으며 애플이 애플스러움을 포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애플 경영진은 잡스에게 매킨토시 개발만 관여하게 했지 애플의 마케팅 전략과 가격 정책 등에서 완전히 배제시켰다. 경쟁사 컴퓨터보다 10년이나 앞선 가히 혁명적인 매킨토시를 손에 거머쥔 애플 경영진은 걱정할 게 없었다.

하지만 잡스는 매킨토시만으로 컴퓨터 시장을 장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킨토시와 함께 디지털 시장을 주도할 미래 전략을 세웠었다.

잡스는 당시 모든 가정마다 컴퓨터를 보유하는 날이 이뤄지는 꿈을 가졌었지만 컴퓨터 사업이 잘되기 위해선 업무용이 먼저란 결론을 내렸다. 그는 매킨토시와 짝을 이룰 "Mac Office"를 계획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나오기 6년 전의 일이다. 또 업무 환경내에서 네트워크 기능을 가능케 해주는 "Apple Talk" 개발을 서둘렀다. 당시로서는 모두 시대를 앞선 튼실한 개발 전략이었다.

매킨토시 고가전략 고집

잡스는 트루 폰트(True Font)라는 컴퓨터 서체 기술을 응용해 모니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화면 그대로의 인쇄가 가능한 레이저 프린트 기술을 직접 기획했고 이 때문에 전자출판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 획기적인 GUI 기반의 매킨토시 운영체제에 만족하지 않고 워크스테이션용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유닉스 기반으로 재구성하는 버전 업그레이드 작업을 AT&T와 함께 기획했다. 이 3가지 전략을 애플에서 지속적으로 밀어부쳤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업 계획은 훨씬 어려운 장애물을 만났을 게 자명하다.

잡스가 사라지자 애플의 존 스컬리 대표와 이사회는 매킨토시 고가전략을 고집하면서 보급형 Apple II 컴퓨터 판매에 매달리게 된다. 잡스를 대신할 사람으로 프랑스 출신의 천재 프로그래머 장 루이 가세를 영입했다. 그는 애플 기술개발 책임자로 부임한 첫날부터 잡스가 기획한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시켜 버렸다. 가세는 또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라이센스화를 기획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세 역시 지나친 독불장군식 업무처리로 경영진과의 불화 끝에 2년만에 애플을 떠나야 했다.

조타수를 잃어버린 애플은 하드웨어 다양화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킨토시 2와 클래식 SE 등 여러모델을 출시했다. 하지만 매킨토시 운영체제가 88년 6.0으로 업데이트 된 이후 7.0이 나오기까지 4년이 흘러야했다. 컴퓨터의 핵심 기술인 운영체제 개발을 소홀히 하면서 값비싼 하드웨어만 찍어내는 사업모델은 결국 애플이 여타 컴퓨터 제조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회사로 전락하게 하는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잦은 경영진교체 등 위기

애플은 90년대 초까지만도 여전히 전세계 2위의 하드웨어 제조사였다. 90년 애플의 시장점유율 12%에서 5%로 하락했지만 전세계 컴퓨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수익은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애플 경영진의 오판은 더욱 깊어만 갔다. 결국 애플은 잡스를 몰아낸 존 스컬리 대표를 92년 실적책임을 물어 해임했다. 그 뒤를 이어 취임한 마이클 스핀들러는 고가정책을 포기하고 다른 컴퓨터 제조사들처럼 저가 경쟁을 시도하다 회사의 적자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고 말았다. 스핀들러는 또 일부 이사진들과 함께 애플 매각을 시도하다 2년 만에 불명예 퇴진당했다.

94년 애플은 길 아멜리오를 대표로 영입했다. 2년 만에 3번째 대표로 등장한 아멜리오는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감원과 긴축재정을 시도했다. 동시에 차세대 제품개발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주가는 거의 휴지조각 신세로 떨어지고 있었다. 잡스가 떠난 이후 10년 동안 애플의 사업전략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제의 테크놀러지를 오늘의 가격으로 팔고 미래에도 계속 그렇게 해야한다." 다시 말하면 충성심 높은 맥 사용자가 맥을 버리고 PC로 옮겨가기 전까지 최대한 울궈먹자는 것이었다.

한때 진보적인 도전정신과 아티스트와 같은 창조력을 내세우면서 컴퓨터 선도기업에 올라선 애플이었지만 구태의연한 사업 전략과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문닫을 위기에 처하고 만다. 잡스 없는 애플이 쇠락의 길을 걷는 사이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애플 광신도의 출현이었다. "혁명적인 신제품과 사용자 편의성"에 반한 애플 컴퓨터 사용자가 바로 그들이었으며 이는 스티브 잡스가 뿌려놓은 씨앗에 의해 잉태된 현상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마이크로소프트란 슈퍼 파워에 장악되면서 이에 반한 소수파(애플 사용자)의 결속력과 불완전하고 복잡 난해한 컴퓨터에 대한 반발 심리 탓이었다. 이들은 언젠가 잡스와 같은 백기사가 출현해 지구상의 모든 컴퓨터 사용자들을 구원해줄 것을 믿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집단 문화였지만 그들이 실체적으로 존재했기에 훗날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기적과도 같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이정필
전직언론인
디지큐브대표
블로그 www.jpthegreenfu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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