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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나는 승자다' 강요하는 사회

김완신/논설실장

CNN방송의 전 앵커 래리 킹은 인터뷰 프로를 진행할 때 '나(I)'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중요하지도 않은 자신의 의견이 들어간다는 것이 이유다. 그저 왜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라고 물을 뿐이라고 한다.

CNN의 간판 토크쇼를 진행한 래리 킹은 미디어 분야에서 고졸이라는 학력의 열세를 딛고 성공 스토리를 쓴 인물이다. 그는 '나'를 내세우지 않고 게스트의 입장을 존중한 것이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성공적으로 토크쇼를 진행하게 된 비결이라고 말한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던 래리 킹과는 달리 지금의 사회는 온통 '나'를 알리는 것에 집중돼 있다. 더 나아가 내가 최고가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논리가 팽배해 있다. 죽여야 살 수 있다는 서바이벌(Survival)의 사회다.

최근 들어 한국 TV에서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도 경쟁의 승자는 살아남고 패자는 탈락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여러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도 선의의 경쟁 차원을 넘어 남을 이기지 못하면 지는 살벌한 경쟁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한국보다 먼저 서바이벌 형식의 TV쇼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쇼에서는 이기기 위한 '나'만 존재한다. '우리의 승리'에 열광하지 않는다. '나'에게 최고의 가치를 두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이미 '우리'라는 공동체적 결속을 넘어섰다.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한가했던 시절의 구호는 이제 '나는 할 수 있다'로 대치됐다.

사회심리학자 해리 트리앤디스는 '사적 자아(self)'가 우세할 경우를 개인주의로 '공적 자아'가 개인의 가치에 우선할 때를 집단주의라고 규정했는데 현대는 '나' 중심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행동이나 사고의 기준에 항상 내가 위치하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경쟁상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회의 복리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되는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적이다.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집단의 목표가 부재할 때 경쟁은 더욱 가열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성향은 인터넷 세대로 표현되는 젊은층의 사회 진출로 가속화되고 있다.

인터넷 세대들의 놀이문화를 보면 가장 중요한 자리에 '나'가 있다. 컴퓨터 게임에서도 작동의 주체로서 '나'만 존재할 뿐 협력은 없다. 또래 집단에 소속돼 리더 또는 팔로워로서의 역할 순환이 이뤄졌던 이전의 놀이문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나는 OO다'라는 단정적이고 독선적인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존경쟁에서 이겼다는 승자의 만용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한경쟁 시대다.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경쟁의 승자가 '우리'가 아닌 '나'가 되려는 치열한 서버이벌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승자와 패자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가치를 이기고 지는 이분법으로 몰아가는 경쟁사회에서 타인의 희생을 발판 삼아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더욱이 승리한 단독자가 돌아가야 할 공동체의 안락함도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나는 승자다'라는 외침을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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