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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50% 세일하는 대학 등록금

김완신/논설실장

한국에서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내리자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비싼 학비에 대한 반발이기는 하지만 이면에는 지금의 등록금을 지불할 만큼 대학졸업장의 효용성이 없다는 불만도 함축돼 있다.

어떤 기준으로 인하폭을 반으로 정했는지 모르지만 경쟁력 없고 품질 낮은 상품은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시장논리가 대학교육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지난 20년 사이 한국의 4년제 대학은 60%가 늘었다. 1990년 125개였던 대학이 지금은 202개로 증가했다. 매년 졸업하는 대학졸업자 수도 127만명에서 245만명으로 많아졌다. 대략 국민 14명 중 한 명이 대졸자다. 현재 한국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약 80%로 미국의 71%와 영국의 57%를 넘어섰고 일본의 50% 독일의 40%를 크게 앞선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투자는 경제협력기구 평균인 GDP의 1.2%에 크게 못미친 0.6%에 불과하다.



미진한 교육투자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교직원의 인건비 비율이 전체 등록금의 53.4%를 차지하고 대부분 사립대학이 고액의 등록금을 걷어 적립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학이 학교운영 비용을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하고 지출이 늘어날 경우에는 학비를 올린다는 철저한 수익논리로 학교를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고교 진학담당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의 말은 충격적이다. 매년 입시철이 되면 지방의 중소대학 교수들이 친구를 찾아와 학생들을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고 한다. 학과 학생수를 채우지 못할 경우 학과 자체를 없앤다는 계약을 교수 임명시에 했기 때문에 교수가 필사적으로 학생모집에 나선다는 것이다. 친구는 '박사'가 새겨진 명함을 남기고 가는 교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재정이 불안정한 학교도 많아졌고 교육의 질도 크게 저하되고 있다. 또한 전국민의 '대졸자화'로 학력 인플레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자의 반수 이상이 고졸 학력만으로도 충분한 업무를 맡고 있다.

'유니버시티'의 라틴어 어원은 '교수와 학자들의 커뮤니티'를 뜻한다. 이 같이 사회와 유리돼 학문연구 공동체 기능을 했던 대학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재양성소로 바뀌었고 현대사회에서는 직업교육 기관으로 변질됐다.

대학의 기능이 이렇게 변화됐지만 문제는 직업교육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대졸 취업자수가 고졸 취업자수를 넘었고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대학졸업장은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교육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이 최고의 목표였다. 그러나 지금의 졸업장은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 가는 보증서가 되지 못한다. 대학이 만능이었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이번 등록금 인하 논쟁은 단순히 과도하게 높은 학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력 인플레 현상과 대졸자를 수용 못하는 취업시장의 한계성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터무니없는 학비는 반드시 내려야 하지만 이와 함께 수준 높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총체적인 대학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반값 등록금 주장이 실현돼 등록금이 인하되더라도 대학교육의 이념과 수준이 '50% 세일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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