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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우디 앨런의 환상 여행 'Midnight in Paris'

[워싱턴 중앙일보] 발행 2011/06/15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1/06/14 20:37

이은미/미드웨스트대 TESOL 교수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이따금 이런 질문을 서로 던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늘 같다.

“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어요. 지금 이 상태가 제일 좋아요. 돌아보면 고민스런 나날들도 많았고, 그다지 행복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가 제일 좋고, 그리고 앞으로 더욱 기쁜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기대해요.”

역사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문제도 결국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가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고,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감사하고 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시간이 평화로워서 고맙다. 과거의 어느 시절도 내게는 매력이 없어 보인다.

우디 앨런 (Woody Allen) 감독이 2011년 여름에 우리에게 선사한 영화 ‘Midnight in Paris (밤의 파리에서 생긴 일)’에서 주인공 남자는 그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꿈꾸는 파리의 1920년대로 간다. 영화가 꿈의 소산이라면, 영화 속의 꿈의 세계는 꿈속의 꿈 일 것이다.

1920년대의 파리의 풍경은 어떠하였나? 거트루드 스타인 부인이 파리의 살롱에서 당시의 청년 작가들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코트 피츠제럴드와 문학 토론을 하고, 피카소, 마티스, 만레이, 달리 등의 예술가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미국의 야만성이 싫다고 영국으로 귀화해버린 엘리어트 역시 파리에 있었다. 엘리어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매년 4월이 오면 ‘사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그의 서사시 ‘황무지’를 읊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2011년의 미국인 소설가가 1920년의 파리에 가서 헤밍웨이를 만나고 스타인부인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습작을 고쳐 나간다. 이 소설가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사실 이쯤에서 나 역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스무 살 이었을 때, 나의 꿈은 ‘미국에 가서 헤밍웨이를 연구하고, 헤밍웨이와 같은, 선이 굵은 소설가가 된다’는 것이었다. 십 여 년 전 플로리다에서 유학하게 된 남편을 따라서 온 가족이 플로리다에 거주하게 되었을 때, 나의 첫 번째 희망은 키웨스트에 가서 헤밍웨이의 저택과 서재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헤밍웨이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마치 일생의 꿈을 이룬 듯 행복해 했었다.

아, 나의 추억 속의 헤밍웨이가 영화 속에 나타나, 죽음을 응시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을 수 있다고 무뚝뚝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우리가 개별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역사 속의 인물들이 사실은 어느 시기에 한 장소에서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살아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파티장에서 서로 스치거나 혹은 카페에서, 살롱에서 어울려 예술과 인생을 논했던 ‘동네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물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구슬을 줄에 꿰듯 향수 어린 회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약에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잘 모를 경우, 이 영화의 매력은 떨어 질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아들에게 “저 사람이 쓴 작품은, 저 사람이 그린 작품이 지금 미국 미술관에…”라고 설명을 해 줬는데, 녀석은 “엄마의 설명이 없었다면, 영화가 재미없을 뻔 했어요”라고 고백했다.

“엄마가, 여름 방학 동안에, 저기 나온 화가들의 작품들을 미술관에 함께 가서 다 보여줄게. 스타인 부인의 흉상은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도 있단다.” 이 영화 덕분에 대학 입학을 앞 둔 아들의 여름방학은 영화에 나온 작가들의 소설과 예술작품을 보는 것으로 채워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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