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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이은미/미드웨스트대 조교수 

 “당신이 처음 내 이름을 묻던 날이 생각나네. 당신은 오래된 신작로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 있네. 자갈밭 속의 자갈처럼, 흙 속의 흙처럼, 먼지 속의 먼지처럼, 거미줄 속의 거미줄처럼.”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 소개가 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서 나도 이 책을 구해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의 문체가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신경숙씨의 문체는 우리 가슴에 그대로 스며든다. ‘먼지 속의 먼지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서울역에서 길을 잃고 사라진 엄마를 찾아 헤매는 큰 딸, 큰 아들, 영감님, 그리고 친구에 대한 사라진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어쩌면 망자가 저승으로 아주 가버리기 전의 넋두리와도 비슷하다.

내 주변에 이 책을 읽었다는 친구들이 여럿이라서 이 소설의 인기를 실감했는데, 대개는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파서 또 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신원 미상의 무연고 처리되는 시신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혹은 범죄의 희생자로, 여러 가지 경로로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들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 같은 현상을 시인 정호승은 그의 ‘세한도’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영등포역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고 하고 / 청량리역 어느 무료급식소에서 봤다고 하는 / 아버지를 찾아 한겨울 내내 /서울을 떠돌다가 /동부시립병원 행려병동으로 실려가 /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행려병자들을 보고 돌아와…”
 
그렇게 신원미상의 시신으로 남겨진 그분들에게도 한 때 눈부시게 빛나는 삶이 흘렀다. 그 눈부신 삶의 기억을 우리들이 읽어내지 못 할 뿐이다. 문학의 위대성은 이런 데 있다. 우리들이 잊어버리거나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소박한 언어로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 가갈 수 있는 근거는 ‘엄마’라는 것이 갖고 있는 인류 보편의 정서에 닿았다는 것이리라. 그뿐이라면 그야말로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김치 냄새’ 풍기는 삼류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틀에 박힌 ‘엄마’ 모습 외에 고유의 독자적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모습이 들어있다. 엄마에게는 평생 손 한번 잡아 보지 않은, 가족 중 아무도 모르는 이성친구도 있었다.

의사가 이름을 물을 때 자기 이름도 잊어버리고 ‘박 소녀’를 외치는 친구, 그런 친구가 평생 그의 곁에 있었다. 엄마의 비밀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있다. 그 비밀들이 엄마를 독자적인 한 ‘사람’으로 세워 놓는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나 역시 할머니, 엄마, 엄마만큼 나이를 먹은 고모님들을 떠올렸다. 각기 다른 얼굴들이지만 비슷비슷한 삶이다.
 
내 엄마는 회갑쯤에 미망인이 되었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생했다. 그래서 거동이 서투르고 언어가 어눌해지셨다. 칠순에는 개인 아마추어 회화 전시회를 열면서 평생 가슴에 담고 있었던 비밀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엄마가 ‘소학교’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라는 것. 엄마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학력’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칠순 할머니가 개인전을 연다고 언론사에서 집에 인터뷰하러 찾아왔을 때, 엄마는 기자들 앞에서 털어 놓으셨다, “내가 국민학교밖에 안 나와서, 평생 졸이고 살았는데, 이렇게 털어 놓으니까 후련합니다.”
 
그 후에 엄마는 몇 년 사이에 두 가지 암 수술을 받고 극복해 내셨다. 그 사이에 엄마의 허리가 휘어지고, 달팽이처럼 한없이 느리게 걷는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아마추어 화가, 우리 엄마의 꿈 “우리 딸네 동네에 커다란 미술관이 많은데, 거기 유명한 사람들 그림이 다 붙어있대. 그걸 보고 와야지!” 오늘은 엄마가 워싱턴에 오는 날.

나는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가겠다. 공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엄마의 기억 속에 눈부신 워싱턴의 나날들을 스며들게 해야지.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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