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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세살때 먹었던 엄마의 된장찌개

안유회 / 뉴스룸코디네이터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 /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 아베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베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 새기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 이 히수므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16년만에 생모찾은 봉거리첸
음식에 담긴 기억이 출발점
한식 세계화도 스토리 담아야


백석의 시 '국수'다. 지난 7일 중앙일보 주관으로 열린 한인 혼혈 셰프 마르자 봉거리첸의 강연을 들으며 백석의 시가 떠올랐다. 백석은 한국어의 촉수로 음식을 감각한 드문 시인이다.

백석은 찰나적으로 보이는 감각의 세계에 서사를 불어넣었다. 그에게 음식은 사람이고 역사였다. 국수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나란히 혹은 둘러앉아 함께 후르륵거리던 사람들의 긴 사연이다. 그 사연은 시대가 되고 역사가 된다.



봉거리첸은 세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리고 16년 뒤에 만난 생모가 끓여준 된장찌개. "찌개를 먹는 순간 행복했다. 나는 세 살 때 엄마가 만들어 준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음식을 기억하는 것은 봉거리첸 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총각김치를 젓가락에 꽂아 딸에게 건넸다. "저도 젓가락질 할 줄 알아요." "아기 때 너 이렇게 먹었어."

음식에 얽힌 사연 하나 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식은 기억을 여는 열쇠이며 태어나고 묻힐 대지에 뿌리내린 끊을 수 없는 탯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세살 때 비웠던 엄마의 된장찌개 한 그릇이 젓가락에 꽂아 먹었던 총각김치 하나가 봉거리첸이 생모를 찾게 한 힘일 지도 모른다.

봉거리첸은 생모의 연락처를 의외로(?) 쉽게 찾았다. 30년 동안 한 집에서 산 삼촌은 전화번호도 그대로였다. 오랜 망설임 끝에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생모에게 전화했다. 어떤 남자가 받았다. "거기 한국사람이 있나요?" 침묵. 그리고 고함. "딸이 전화했어요!" 생모는 전화를 받고 기절했다.

봉거리첸은 "(내가 세 살 때) 한국은 나같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대와 세월이 담긴 개인사는 그가 주인공을 맡고 에릭 이가 제작한 13부작 한식 다큐멘터리 제목을 '김치 연대기'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음식 다큐멘터리에 연대기라는 서사적 단어라니.

백석의 시처럼 '김치 연대기'도 한식이 맛이 있다 없다 세계에서 통한다 안 통한다 건강에 좋다 안 좋다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을 만들고 먹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사는 시대와 문화 역사를 얘기한다.

아마도 요즘 한식과 관련해 가장 많이 오가는 이야기가 세계 시장에 어떻게 진출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뉴욕의 유명 셰프인 봉거리첸도 강연회에서 이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변은 "한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입맛에 맞추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리라는 말로 들렸다.

다큐멘터리에서 봉거리첸은 쌈을 싸서 남편인 셰프 장-조지 마르자 봉거리첸의 입에 넣어주며 출연자인 배우 휴 잭먼 부부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쌈을 싸서 먹여주는 것은 애정의 표시예요."

역사와 이야기가 있으면 강하다. 한식도 그렇다. 봉거리첸의 '김치연대기'도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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