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58.0°

2019.05.21(Tue)

[성서인물열전-아달랴] 권력의 노예가 된 잔혹한 여제(女帝)

[LA중앙일보] 발행 2011/07/13 종교 8면 기사입력 2011/07/12 17:08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교무처장

세계사 속에서 최고 권력의 자리는 늘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어떤 남성 권력자들보다도 잔인하고 냉철했으며 비정한 권력을 탐해 한 시대를 치세한 여걸들이 있었다.

이집트 여왕으로 여러 최고 권력자들을 차례로 정복한 클레오파트라 스페인 제국에 초석을 놓은 이사벨 1세 스페인을 물리친 해적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청나라의 태평성대를 가져온 효장문황후 해가 지지 않은 나라를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 등.

권력을 탐하는데 남녀의 구별이 어디 있겠는가? 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권력자들의 탁월함 뒤에 감추어진 잔인함과 추악함은 인간 내면 본래의 모습이 아니던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역대 왕들 가운데 유일한 여왕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아달랴였다.

아달랴는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서 남 유다 왕국의 5대 왕이었던 여호람과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이렇듯 분단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서로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왕가끼리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간교하고 잔인한 왕비였던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는 그 어머니의 냉혈한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은 여자였다. 그녀는 야훼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고 가나안의 신 바알을 섬기는 열렬한 우상 숭배자로 왕가를 이교신앙으로 물들였다.

여호람은 왕위에 오르자 여섯 형제를 살해하는 등 악행을 자행하다가 결국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대로 병들어 죽게 되었다.

아달랴의 아들들은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모두 살해당하였고 오직 막내아들인 아하시야만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였다.

여호람이 병들어 죽자 살아남은 막내아들 아하시야가 남 유다의 6대 왕이 되었고 아달랴의 섭정을 받던 아하시야는 왕위에 오른 지 1년이 채 되지도 않아 북 이스라엘 왕 요람과 동맹하여 아람(지금의 시리아 지역)을 치다가 쿠데타를 일으킨 예후에게 치명상을 입고 도망가다 살해당하였다.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권력에 한껏 굶주린 야수가 되어 요아스를 제외한 모든 손자들을 무참히 도륙하였다.

이세벨의 핏빛 광기가 유다 역사에 되살아난 듯 아달랴는 자신의 피붙이까지도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살해한 것이다.

손자들이 행여 왕위를 차지할까봐 살해한 아달랴의 이러한 잔학한 행위의 이면에는 남 유다 왕국의 정통 계보인 다윗 가문의 씨를 진멸하기 위한 정략적인 의도 또한 있었으리라.

예후의 반역으로 아달랴의 친정인 아합 가문이 몰락하였고 주변 국가인 아람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혼란한 국내외 정세에도 불구하고 아달랴는 6년 동안 다스렸으니 정치적 역량은 있는 여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아달랴는 재위 7년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가 자행한 살해 현장에서 용케 살아남은 요아스를 성전에서 기름 붓고 면류관을 씌워 왕으로 삼았다.

백성의 무리가 즐거이 환호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자 그 소리를 듣고서 온 아달랴는 "반역이로다."고 소리쳤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결국 아달랴는 성전 바깥으로 끌려가 왕궁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민심과 천심이 이미 떠난 권력이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토마스 홉스(영국의 철학자)의 말처럼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는 끝없고 쉼없는 인간의 권력욕"의 덧없음을 아달랴의 인생 종말이 보여준 셈이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

핫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