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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인 칼럼] 돌아보면 다 감사할 거리들

[LA중앙일보] 기사입력 2000/11/22 10:33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곳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게 ‘익스큐스 미’와 ‘댕큐’라는 말이었다. 오다가다 본의 아니게 남을 조금만 건드리고 지나도 ‘익스큐스 미’이고, 안녕하냐는 상투적인 인사말에 답을 하면서도 ‘댕큐’라는 말을 꼭꼭 붙이는 거였다. 하루종일 그 두 말을 입에 달다시피 하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처음에는 그런 그들이 진중하지 못하고 호들갑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려면 그래야 되나보다며 어색하지만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일상생활이라는 게 뭔지, 환경에 적응하게 마련인가 보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니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한국에 나가게 되면 거슬리는 일 중의 하나가 이곳과 반대되는 현상과 접했을 때다. 실례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적시적소에서 사용하지 않는 그곳 생활분위기가 그렇다. 사람을 툭툭치거나 밀치고 다니기 예사이고, 또 분명히 고맙다 감사하단 반응을 나타내야 할 때 그냥 무뚝뚝하게 지나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짜증이 난다.

이 짤막한 두 표현을 하고, 하지않음에 따라 사람의 기분을 좋게도 만들고 잡치게도 만든다. 사실 신문지상에나 오르내릴 큰 사건들이 마음 깊이 와닿지 못하는 때가 많은데 비해 개개인간의 하찮은 표현들이 커다란 기쁨을 주고 또 사소한 불화가 심한 슬픔을 주며 열을 받게도 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도처에 ‘감사’라는 단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일상생활중에 ‘댕큐’라는 말을 넘치도록 하고 살지만 특히 이 시즌 즈음해선 일년치 감사를 한꺼번에 모아놓은 듯 감사의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번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산다. 비록 입에 발린 타성일지라도 안하는것 보단 나은 것 같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thanksgiving이란 단어는 ‘감사의 표시’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받은 것에 대해 감사의 표현을 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흔히 감사의 표시를 하려면 받은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것’은 무엇인가. 개중에는 “나는 받은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한탄한다.

나처럼 박복한 사람은 없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 받기를 했나, 아름다움을 받았나, 그렇다고 교육을 제대로 시켜 받았나, 남편의 돈을(잘 벌어) 받았나, 자식들의 효도를 받았나, 직장에서 대우를 받았나, 식구들로부터 가장대우를 받았나…. 그러니 나는 감사의 표시를 할 일이 전혀 없는 인간이다.

과연 그럴까. 조금만 정신차려 생각하면 우리는 각자 받은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잊고 지낼 뿐이다. 차제에 기본적인 것만이라도 다시한번 상기해봤으면 좋겠다.
우선 우리는 생명을 받았다. 거기에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기에 가장 중요한 기능을 받았다.

그 뿐인가. ‘자유의지’라는 인식하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추가로 받았다. 그것이 선한 쪽이든 악한 쪽이든.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받지 못하고 태어났거나 또는 후천적으로 불능이 됐을 때의 자신의 처지를 상상해보자. 그래도 ‘나는 받은게 하나도 없다’고 큰 소리 칠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한 교만이다.

생명, 그리고 보고 듣고 말하고 자유의지. 이밖에 받은 것들은 옵션에 불과할 정도로 인간의 존재 조건과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많은 옵션을 받기를 원한다. 욕심이 그 옵션의 범위를 점점 넓혀나가다 결국 마음의 고장을 일으키고 만다. 마치 옵션이 많이 장착된 복잡한 기계가 한번 고장났다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것 처럼.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라. 이 말처럼 초교파, 초종교, 심지어 무신론자들에게까지 좋게 들리는 훈계가 없을 것 같다. 사소한 것들도 돌아보면 다 감사할 거리들 아닌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꿈적이기 조차 싫어져 집안청소하기가 너무도 귀찮다는 한 중년이 미루고 미루다 어느 순간 작심을 했다. 기왕에 할바에야 감사하기로. 무거운 가구들을 움직이면서, 배큠을 가동하면서, 먼지를 닦아내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땀흘려 내몸 움직이며 청소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소후 또 이렇게 깨끗함을 볼 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석인<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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