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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 뉴스] 종교적 광기와 노르웨이의 비극

김석하/특집부장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 작가다. 웬만한 가정집에는 그의 책이 한 두 권쯤 있을 정도다. 대표작은 '상실의 시대'(1987년).

이 책을 번역.출판한 문학사상사는 "젊은 세대들의 방황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고 책을 소개하고 있다. 내용이 책 제목에 딱 맞는 것 같지만 사실 원래 책 제목은 전혀 다르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 우리가 아는 '상실의 시대'와는 전혀 무관하다. 굳이 두 제목을 연결해보자면 북유럽 노르웨이의 숲이 왠지 춥고 스산하고 단절.고립된 이미지를 갖고 있어 '상실'의 이미지와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원래 제목도 실수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원제는 주인공이 비행기 내에서 흐르고 있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과거를 회상하는 데서 따왔다고 돼 있다. 하지만 비틀스 노래 중에 '노르웨이의 숲'은 없다. 비틀스 노래는 'Norwegian Wood(노르웨이산 목재로 된 가구)'다. 숲이 되려면 Woods로 돼 있어야 한다.

가사는 이렇다. "I once had a girl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중략)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So l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 원나이트 스탠드를 계획했다가 무산된 한 젊은이의 극히 개인적인 일을 그렸다.



결국 하루키의 대표작 제목은 노르웨이 가구가 될 운명에서 사소한 오역으로 인해 노르웨이 숲이 됐고 그 이미지의 확대로 상실의 시대라는 철학적 이름으로 탈바꿈됐다.

노르웨이하면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돼 있는 북유럽 선진국가다. 특히 근.현대 세계사의 굴곡에 등장하지 않았던 조용하고 안정된 나라다. 그런 노르웨이에서 지난 22일 연쇄 테러가 발생해 90여 명이 희생됐다. 지금 노르웨이는 자국의 유명화가 뭉크의 그림처럼 '절규'하고 있다.

용의자 안드레스 브레이빅(32)은 다문화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극우 민족주의자이며 반이슬람을 주장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테러를 감행하기 전부터 "오늘날의 정치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간의 싸움" "무슬림과 함께 사는 것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글을 온라인에 남겼다.

정치.경제.사회가 안정돼 있던 노르웨이의 테러 소식은 세계를 불안케 하고 있다. 중동.미국.서유럽에서 주로 발생해온 종교적.이념적 테러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특히 용의자가 남긴 글을 보면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 전개 결론이 똑같다. 다만 반대편인 기독교 입장에 서 있을 뿐이다.

브레이빅은 범행을 저지르기 전 트위터에 "신념을 가진 자의 힘은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는 10만 명의 힘에 맞먹는다"는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인용했다. 자신은 신념에 차서 일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다.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우파 또는 좌파든 잘못된 확신에 찬 극단주의자들로 인해 테러 위험 지역은 갈수록 확대되는 상황이다.

언급한 비틀스의 노래와 하루키의 책은 노르웨이를 모티브 삼아 '신념을 상실'한 60년대 젊은 세대의 허무주의적인 연애담을 담았다.

50년이 지난 그 나라에서 '잘못된 신념'으로 인한 초대형 테러가 발생했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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