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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욕 나오는' 한국 영화

이종호/논설위원

요즘 한국 영화 참 잘 만든다. 구성 탄탄하고 스토리 설득력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쉽게 몰입이 된다. 그래서 뚜렷한 스타 배우가 나오지 않아도 흥행이 된다. 올 여름 한국 극장가 최대 흥행작이라는 '써니'도 그렇다. 개봉 두 달 만에 710만 명이나 봤다. 이대로 가면 한국영화 역대 흥행 '톱10'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란다.

강형철(37)이라는 젊은 감독이 만들었다. 2008년 '과속스캔들'로 데뷔한 신예다. 그때도 831만 명이 그의 영화를 즐겼다. 역대 흥행 8위의 기록이다. 대중의 기호와 트렌드 읽기의 귀재라는 평을 듣게 된 강 감독. 도대체 영화에서 그는 무얼 말하려 했을까.

빛나는 청춘시절을 함께 했던 7명의 여고생들 그들이 25년 만에 다시 만나 생애 최고의 순간을 되찾는다는 것이 '써니'의 얼개다. 영화는 1980년대 복고 문화를 소재로 우정과 꿈을 주제로 그리고 추억 들추기로 30~40대 주부들의 공감 코드와 감정선을 자극한다.

소문도 확인할 겸 월요일 퇴근 후 영화관을 찾았다. 평일인데도 객석은 3분의 2쯤 찼다. 슬프고도 즐거운 아프고도 흐뭇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11.5달러의 입장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구석도 있었다. 유쾌한 영화 실컷 잘 보고도 씁쓸할 수밖에 없었던 불쾌감은 이런 것이다. 사실 '써니' 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 한국 영화 너무 거칠다. 욕과 폭력이 지나치게 많다. 필요 이상으로 벗고 정도 이상으로 비튼다. '써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개xx와 쌍시옷이 무수히 들어간 욕과 저속어.비속어들이 어린 여학생들의 입을 통해 여과없이 쏟아진다. 어두운 극장 안이라 눈치챌 사람은 없었겠지만 민망하고 낯이 화끈거려 손발이 다 오그라들었다.

감독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맞추기 위해 수위를 조절했다고 한다. 조절한 것이 이 정도라니 기가 찼다.

젊은이들은 그것이 재미라고 항변한다. 마케터들은 그것이 흥행코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욕이 불편한 관객도 생각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욕으로 범벅이 된 대사가 세상에 끼칠 해악도 한 번쯤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요즘 한국은 욕이 일상화된 사회다. 특히 청소년들의 대화는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난다고 한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미디어 탓도 크겠다.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영화가 안 되고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에서도 툭하면 욕이 튀어나온다. 게다가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욕을 알리고 가르치는 '욕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욕은 영혼을 갉아먹는 악마의 언어다.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앙갚음의 감정을 조장한다. 폭력에 폭력을 부르는 파괴적 반인격적 비인간적 언어가 욕이다. 그런 욕을 언제까지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

공동선을 해치는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규범과 도덕 그리고 각종 법을 통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 문명사회다. 그런데도 공공 미디어 속에 낯 뜨거운 욕설이 버젓이 용납되고 방치되는 이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

'써니'의 강 감독은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다. 나는 그가 욕설 규제 따위의 문제로 당국과 실랑이 하며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낯 간지러운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써니'에 다 내보지 못한 나머지 욕까지 모두 살린 무삭제판을 다시 개봉하겠다고 했다. 실망!

욕 없이도 재미있고 흥행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 요즘 감독들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언제쯤 그것을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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