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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오래 사세요"가 달갑지 않은 사회

이원영/편집국 선임에디터

앞으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뵐 때 “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는 가려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에서 나온 뉴스 한 토막 제목은 이랬다. ‘국민 43%, “100세 시대 축복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00세 시대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도한 것이었다. 장수 시대를 맞아 희망수명ㆍ가족관ㆍ노후생활 등 몇 항목의 설문 결과들이 나왔는데 머리를 한 대 쿵 얻어맞는 듯한 의외성을 발견하곤 많이 놀랐다.

우선 90세 또는 100세 이상까지 사는 ‘장수 현상’을 축복으로 여기느냐는 질문인데 ‘축복이 아니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43.3%에 달했다. 얼추 절반이다.
‘축복이다’고 답한 응답자는 28.7%에 불과했다. ‘준비되지 않은 100세 장수’에 대한 불안감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 긴 노년기(38.3%), 질병ㆍ빈곤ㆍ소외 등 노인문제(30.6%), 자식에 부담(24.1%) 등으로 나왔다.

이처럼 무작정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희망 수명’ 항목에서도 반영됐는데 90세 이상 장수를 희망하는 사람은 전체의 16%에 지나지 않았다. 희망 수명을 80대로 한정한 사람이 전체의 59.3%로 압도적이었다. ‘적당히 살면 되지 구차하게 뭐 오래 사나’ 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노년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눈에 띄게 늘어나는 수명에 대해 사람들이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읽게 한다.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희망 수명은 길어질 것이란 짐작이 간다.

‘노년기 삶에 중요한 가족 구성원’을 묻는 항목도 눈길을 끈다. 전체의 84.3%가 배우자를 꼽았고, 자녀는 12.6%, 형제ㆍ자매는 1.3%에 그쳤다. ”늙으면 마누라ㆍ남편 밖에 없다, 그러니 있을 때 잘 해. 자식은 키워봤자 말짱 도루묵“라는 항간의 얘기가 빈말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배우자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라 여긴다면 지지고 볶고 싸울 일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장수 시대를 맞아 가족 외에 중요한 인적 자원으로는 '친구'가 68.4%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지역사회 주민이 22.6%를 차지, 좋은 ‘이웃 사촌’이 삶의 질에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재정적으로 노후 준비를 잘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다수(86.2%)가 ‘현재 지출이 더 급해서’라고 답해 노후에 대한 경제적 대비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조사지만 미주 한인사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100세 시대가 코 앞에 다가왔으니 철저한 은퇴 플랜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장수시대를 달갑게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다가올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하든 원치 않든 장수시대는 이미 ‘현실’이 됐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마지못해 살아야 하는’ 시간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노후 할 일 찾기, 배우자에게 잘하기, 건강 챙기기, 친구 만들기,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기, 절약해서 돈 모으기 등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장수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국가와 사회에 기대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오래 사세요"란 인사말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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