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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루게릭병과 싸우는 여인

모니카 류 방사선과 암전문의

여름밤이 무척이나 울적하다. 오랜만에 틀어 놓은 CD에서는 오래 전의 가수가 오래된 노래를 주위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열창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울적함을 털어 버릴 수 없을까. 쉬이 잊혀지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렇다. 그것은 내가 오늘 루게릭병에 걸린 어떤 여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여인이 나에게 온 것은 물론 루게릭병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여인에게 또 하나 닥친 암울한 질병 유방암 때문이었다. 루게릭병으로 지난 2년간 고통 받아 온 여인의 남은 생은 약 2년으로 보고 있었다.

제법 덩어리가 큰 암 때문에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외과 의사는 모두 떼어내는 것을 피하고 환자가 힘들지 않을 정도 만큼만 수술을 했다. 실리콘 백을 가슴을 도려 낸 공간에 넣고 봉합을 했다. 옷을 입으면 유방 절제를 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수술까지 동시에 한 것이다.



그녀는 비록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자신을 잘 가꾸는 것 같았다. 옅은 화장이 보기 좋았다. 목에는 간단한 목걸이가 걸려 있고 입고 벗기 쉽게 성글게 짠 보라색 상의를 걸치고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페디큐어도 했지만 마비된 두 다리는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 그녀가 입은 보라색 상의처럼 붉고 푸르렀다.

그녀의 눈은 정결하고 애가 타거나 욕망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가끔씩 눈물이 고이는 듯 하더니 그냥 사라지곤 했다.

진찰이 끝난 후 나는 그녀와 그리고 그녀의 딸과 함께 마주 앉았다. 루게릭병이 꽤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6개월 전에는 다리만 약했었는데 지금은 손에도 마비가 오는 중이어서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요리는 그럭 저럭 가끔씩 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집안에서 해야하는 대부분의 일과를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욕조에 앉혀 주면 목욕도 스스로 하고 대소변도 실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방사선 치료를 추천하지 않았다. 다만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에게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또 남은 시간을 이용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처럼 그녀를 잠깐 보았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보내겠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울었다. 곁에 있던 딸도 울었다.

암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암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스스로 단정해 버린다. 그것은 옳지 않은 정보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 여인이 겪는 것처럼 암이 아닌 조직학적으로 지극히 양성인 병이 암보다 훨씬 급성적이고 악성일 경우가 있다. 유방암보다 루게릭병이 오히려 그녀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루게릭병. 한국말로 '근위축성측생 경화증(ALS)'으로 번역된다. 미국에서는 1939년 뉴욕 양키스 야구팀 선수인 루 게릭이 이 병으로 쓰러진 것을 기억해 루게릭병이라고 부른다.

보통 정신도 멀쩡하고 대소변 보는 것에 지장이 없고 감각신경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운동신경이 죽어서 결국 2~3년의 짧은 투병 끝에 환자는 사망하게 된다.

진찰실을 떠나는 그녀에게 "허그해 주고 싶은데 어때요?"하니까 "아이구 선생님 ALS에 전염되시려고요" 한다. 우리는 농담했고 웃었고 포옹을 했고 그리고 헤어졌다.

이 저녁 마음이 자꾸만 깊이 가라 앉는 것은 저 처량 맞은 음악 때문인가. 내일 오피스에 가면 그녀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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