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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껌의 예술, 껌의 정치

이종호/논설위원

씹던 껌 수만개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색 공간이 전국적 예술(?) 명소가 된 곳이 있다.

샌루이스 오비스포.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 101번 프리웨이를 따라 세 시간 쯤 올라가면 만나는 예쁜 도시다. 고색창연한 서부개척 시대의 미션 등 볼거리도 많다. 허스트 캐슬 아빌라 비치 피스모 비치 같은 관광지가 가까이 있고 한인들 좋아하는 온천도 근처에 있다. 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에겐 그런 판에 박힌 명승지보다 '버블껌 앨리(Bubblegum Alley)'라는 곳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샌루이스 오비스포 도심 한가운데 있는 그곳은 예술이 '별것' 인줄로만 알던 사람에게 '예술이 별건가'라는 생각도 갖게 만드는 곳이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5미터가 채 못 되는 좁은 골목길 2층 높이의 양쪽 벽면은 씹다 붙인 껌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별 하트 성조기 글자 등 모양도 천차만별이고 웬 껌의 종류가 그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색깔도 가지가지다. 오래된 것은 세월과 날씨 덕에 먼지가 붙고 새까맣게 변색해 원래 껌이었는지 아스팔트였는지 분간이 안 된다.

누가 처음 이곳에 껌을 붙이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차대전 이후 인근 고교생들의 이벤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1950~60년대 캘폴리 대학생들이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건물주나 주민들의 반발도 심했다. 수차례 당국에 껌 제거 진정이 접수됐고 실제로 몇 번은 깨끗이 청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그곳은 1960년대부터 명소가 됐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껌을 붙였으며 지금은 방문자들까지 합세해 껌을 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젠 매일 수백명씩 찾는 샌루이스 오비스포의 랜드마크가 됐다.

노동절 연휴 샌프란시스코 여행길에 그곳을 찾았다. 일정이 바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며 몇 번이나 졸라댄 아들 덕에 예정에 없던 방문을 한 것이다.

가서 보니 듣던대로 이색적이고 신기했다. 대신 내 눈엔 그만큼 지저분하고 혐오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을 찾은 다른 젊은이들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감동했고 저마다 새로운 껌을 붙이며 즐거워했다. 아이도 마찬가지여서 그동안 엄마 아빠가 데려간 어떤 관광지들보다 이곳이 더 인상적이라며 흥분했다.

생각하는 방식이 이렇게들 다르구나. 그래서 또 하나 배웠다. '뻔한 눈 뻔한 잣대로만 세상을 보지 말자. 내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은 없으니까. 번듯하게 잘 닦인 길만 고집하지 말자. 길섶의 꽃이나 한 발 떨어진 곳의 절경은 못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러고 나니 요즘 신문에 오르내리는 한국 정치판이 다시 보였다. 우선 안철수 바람이다. 신드롬의 핵심은 식상한 것들에 대한 거부 진부한 것에 대한 도전이었다. 정해진 틀 정해진 방식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않았던 안 교수의 남다름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 교수의 '정치'는 처음부터 특별했다.

하지만 비슷하면서도 전혀 특별하지 않고 시원하기는커녕 불쾌지수만 높인 찜찜한 바람도 있었다. 일부 목사님들의 기독교 정당 창당 얘기다.

샌루이스 오비스포의 껌은 상식파괴로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며 '특별한 예술' 대접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아무나 상식을 뒤집는다고 해서 특별해 지진 않는다.

정치가 '별것'인줄 아는 사람들에게 '정치가 별건가'라는 허무개그만 퍼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치에 뜻을 둔 분들이라면 가끔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그것이 힘들면 '버블껌 앨리' 같은 곳을 한 번쯤 방문해 보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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