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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한국 땅 독도와 영국 땅 포클랜드

[LA중앙일보] 발행 2011/09/22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1/09/21 19:41

아르헨티나 180년 노력도
힘과 외교력의 영국 못 당해내
독도문제 타산지석 삼을 만

대서양 최남단 포클랜드 섬은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오랜 영토 분쟁지역이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함께 언제나 영국 편이었다.

그런 한국이 포클랜드해(Falkland Sea)를 아르헨티나에서 부르는 말비나스해(Malvinas Sea)와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우리의 동해 표기 노력을 무시하고 일본 편만 들고 있는 영국에 대한 맞불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란다.

국제관계는 호혜주의가 기본이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소 유치한 면은 있지만 모처럼 한국 정부가 시원한 일을 했다.

사실 오랜 우방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일방적으로 영국을 편들었던 경향이 있다. 말비나스 대신 포클랜드라는 이름을 고수해 온 것도 그 중 하나다.

전라남도 넓이만한 포클랜드는 동서 두 개의 큰 섬과 2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아르헨티나 본토에서는 480km정도 떨어져 있다. 한반도에서 독도까지가 약 220km임을 감안하면 꽤 먼 거리다. 그러나 영국에서 포클랜드까지는 1만3000km가 넘는다. 서울과 LA까지가 약 9600km이니 얼마나 먼 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포클랜드는 지금껏 영국령이다. 19세기 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같은 스페인 식민지였던 포클랜드도 자국 땅임을 공식 선포했다. 그러나 1833년 영국은 그곳을 무력 점령하고 자치령으로 삼아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인들에게 포클랜드는 아니 말비나스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숙원의 땅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부터 지도를 그릴 때도 항상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그려 넣고 아르헨티나 영토로 표기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렇게 150년을 별러 온 아르헨티나는 1982년 4월 마침내 말비나스 강제 탈환에 나섰다. 포클랜드 전쟁의 시작이었다.

영국이 순순히 섬을 내줄 리 만무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 앤드류 왕자까지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이는 포클랜드를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시위해 보이는 것이었다. 국가 위기 앞에 가장 먼저 전선으로 달려간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앞에 국민과 군의 사기도 하늘을 찔렀다.

결국 전쟁은 75일만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끝났다. 아르헨티나는 655명이 전사하고 항공기 94대 함정 11척을 잃었다. 영국도 236명 전사 항공기 25대 함정 13척의 피해를 봤다.

승리의 주역 대처 수상은 이듬 해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또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영국병'을 치유하며 2류 국가로 전락해가던 영국의 자존심을 회복시켰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국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군부정권이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

포클랜드는 우리에겐 독도의 타산지석이다.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가 제국주의에 의해 불법 점거된 섬이라며 180년을 흥분하고 떠들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실제 점유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영유권의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무력으로도 되찾지 못했다. 영국은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지켜냈기 때문이다.

독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이상 일본의 어떤 술수에도 말려들어갈 필요가 없다. 무시하면 된다. 포클랜드의 영국처럼. 그리고 우리 땅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겠는 결연한 의지도 천명해 보여야 한다. 역시 아르헨티나군을 물리친 영국처럼.

동해 표기에서 일방적으로 일본 편에만 선 영국은 얄밉지만 그들의 노련한 외교와 힘의 정책은 배워야 한다.

이종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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