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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우체국이 서 있던 자리

김완신/논설 실장

극심한 적자를 겪고 있는 연방우정국(USPS)이 26일 획기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우표의 표지모델을 생존 인물로 할 수 없다는 기존의 전통을 철회한 것이다. 지난 2007년 재정된 법은 사망한 지 5년이 안 된 인물은 우표에 등장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사망 후 10년이 지나야 우표 모델이 될 수 있었다.

우정국은 이 같은 발표를 하면서 우표에 게재할 인물들을 추천받고 있다. 각지에서 보내는 추천 명단은 다양하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스티브 잡스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 등을 비롯해 여성단체에서는 비만퇴치 운동을 펼치는 미셸 오바마를 추천하고 있다.

심지어 할리우드의 말썽꾼 찰리 신과 인기가수 레이디 가가를 우표에 넣자는 주장도 있고 자신이 모델이 되겠다는 사람도 있다. 워싱턴 링컨과 함께 레이디 가가가 우표에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우정국은 이번 결정이 '생존해 있는 인물들의 업적을 기리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만성적자를 타개해 보려는 궁여지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 발행되는 우표의 상당수가 편지용보다는 수집용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현존 인물을 모델로 할 경우 수익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이번 결정 이전에도 우정국은 주 5일 배달제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지난 22일 연방하원 개혁감독위원회에서 5일 배달제가 통과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우편배달은 1983년 연방의회에서 6일 배달제를 의무화하면서 이를 고수해 왔지만 누적된 적자로 토요일 배달이 불가능해졌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 시절에는 구인난과 차량부족으로 배달에 지장까지 받았지만 이제는 2015년까지 22만명의 직원을 감축하고 수천개의 우체국을 폐쇄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1775년 식민지 의회에서 우편제 실시를 의결해 벤자민 프랭클린을 첫 우정국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된 미국의 우편제도는 1792년에 행정부 수준의 제도를 갖췄다. 현재 연방우정국에는 약 57만4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는 공공기관과 기업을 통틀어 월마트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또한 우정국이 운용하는 수송차량은 약 21만8000대로 단일기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를 보유하고 있다.

우정국은 3만여 개의 우체국을 운영하면서 매년 1770억 건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지만 인터넷 시대를 맞아 점점 업무가 줄고 있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보급됐던 1998년 이후 2008년까지 편지를 비롯한 1종 우편물은 29%나 감소했다. 우체국의 쇠퇴 원인이 이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 때문이지만 우정국도 이제는 이를 통해 우표모델을 추천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이메일이 편지를 대신하는 시대다. 그리운 얼굴들을 생각하며 쓴 편지를 들고 우체통을 향하던 시절은 오래전 풍경이 됐다. 부모 형제 친구 연인들과 주고 받는 따뜻한 언어들은 종이가 아닌 컴퓨터 모니터에 차가운 문자로 떠오른다.

인터넷과 첨단기술의 발달이 생활의 편리를 주었지만 편지 보내기의 낭만을 멀어지게 했다. 오지 않는 소식을 기다리며 잦은 눈길을 보냈던 우편함에는 더 이상 기다림과 설렘이 머물지 않는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는 고은의 노랫말은 이제 옛 것이 돼가고 우체국을 추억의 장소로 간직하기에는 시대가 변했다. 사라져가는 편지와 우체국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가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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