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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영화 '도가니'와 소설 '도가니'

김완신/논설실장

청각장애자 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2주만에 250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면서 공분(公憤)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장애자 인권에 무감각했던 정치권도 나섰다. 한나라당은 '도가니 방지법'을 발의 예고했고 민주당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회의원들도 경쟁적으로 합세했다. '도가니'에 분노하지 않으면 사회정의와 장애자권리를 모르는 의식없는 정치인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장애자보호법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듯 관할 행정기관의 관리감독 소홀을 질책하고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되면서 정치인들이 들끓듯이 나서고 있지만 공지영 원작의 소설 '도가니'가 발표됐을 때 관심을 가졌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네티즌을 중심으로 재수사와 아동성폭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 요구가 일어났지만 '인터넷 속의 태풍'으로 그쳤을 뿐이다. 발표 당시 소설 '도가니'는 수십만권의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음에도 파장은 크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영화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소설과 영화는 '스토리'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대문호 톨스토이도 "카메라로 영화를 찍듯이 글을 쓰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영화가 갖는 영향력과 공론화 기능은 막강하다.



1955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중년 남성의 소녀에 대한 성적 욕망을 다룬 '롤리타'를 발표해 충격을 주었지만 그 작품이 일반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스탠리 큐빅과 애드리안 라인 감독이 영화화했을 때였다. 1973년에 발표 된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도 단두대로 형을 집행하는 프랑스 사형제도 폐지의 기폭제가 됐다. 한국에서는 아동 유괴사건을 다룬 '그놈 목소리'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살인의 추억'이 개봉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었다.

영화와 소설은 소비 주체와 전달방식이 다르다. 소설은 수만권이 발간돼도 결국은 그 책을 읽는 개인과 작품과의 일대일 교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소비 주체를 소수에서 다수로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대시키는 대중성이 있다. 다수를 상대로 한 대중성이 사회적인 이슈와 결합할 때 영화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

문학은 상상의 여지를 주지만 영화는 제한된 시간에 선택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 이러한 정보는 활자가 아닌 눈과 귀에 직접 자극하는 영상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즉각적인 전달이 가능하다. 문자를 도구로 하는 문학이 영화가 주는 현실감과 리얼리티를 넘어서기는 사실상 어렵다. 또한 인터넷 시대의 영상 이미지에 익숙한 현대인의 감성에도 영화가 더 호소력을 갖는다.

사회 곳곳에 만연된 장애자에 대한 폭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영화 '도가니'가 가져온 반향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실감하게 한다. 영화가 만든 공론화는 소수의 특정집단이 아닌 대중적 기반에서 형성된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약자를 외면했던 정치인들에까지 원하듯 원치 않든 뒤늦은 분노를 강요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 대중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소설 '도가니'의 무대가 됐던 곳은 안개에 덮여 있는 '무진시(霧津市)'다. 안개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악행은 안개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소설 속의 무진시를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냈지만 카메라가 담은 실체는 여전히 흐린 안개에 가려져 있다. 이제 그 안개를 걷어내는 일이 정치인들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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