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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 번도 늙어보지 못한 젊은이들'

부소현/jTBC LA특파원

회사로 편지가 한 장 왔다.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는 사우스베이에 사는 한 백인노인이 자신을 가족처럼 챙겨준 식당의 한인 여종업원에게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유산의 일부를 남겨줬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편지에 식당과 종업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쓰여 있지 않았지만 직감상 편지를 쓴 사람의 가족 이야기 같았다.

발신인 주소를 찾아갔다. 편지가 보내진 곳은 토런스에 있는 오래된 미국식 카페. 가게 안에 들어서자 한인 여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기자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친절한 종업원은 이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한인 부부의 큰 딸. 여주인은 딸의 이야기를 남편이 적어 보냈다고 했다.

마침 딸은 이날 가게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딸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 뒤 연락처를 남기고 나왔다.



그러나 이날 오후 딸은 기자에게 전화해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자신이 한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할 수 없이 식당과 딸의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해 기사〈본보 10월 12일자 1.7면>를 썼다. 아쉬웠지만 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따금 양로병원 노인아파트 등 한인 노인들과 관련된 취재를 한다. 얼마 전 한 한인 여성단체에서 노인병원을 방문해 위로공연을 한다기에 취재를 나갔다.

단체 회원들은 한인 노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준비해 온 선물을 나눠줬다. 기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눈길을 끌만한 공연은 아니었다. 선물도 그랬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선물을 받은 노인들은 달랐다. 함께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더없이 즐거워 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두 번 세 번 인사를 했다.

기사를 쓰기 위한 취재는 한참전에 끝냈지만 이날은 오랫동안 병원에 서서 노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지나간 주름진 얼굴에서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 노인이 젊은 사람이 버릇없이 굴자 "너희 늙어봤어? 나는 젊어봤다!"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한때 젊어본 사람만이 비로소 늙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절대 늙어볼 수 없기 때문에 나이와 세월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어떤가? 젊은 사람만을 대접하고 보살핀다. 노인들을 위한 공경과 배려는 점점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노인에게 유산을 받게 된 종업원은 자신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골손님에 지나지 않는 자신에게 매일 다른 메뉴의 아침을 준비해 주고 아프면 함께 병원에 가줬던 종업원의 친절은 노인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남겨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고마운 일이었다.

노인들에게 젊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친절과 정성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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