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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라운지] 조 프레이저

전국민의 가슴을 뛰게 했던 70~80년대 최고의 격투기 프로복싱. 얻어 맞고 터지고 찢어져도 결코 굴하지 않는 우리의 민족성과 영락없이 닮았다.

홍수환 유제두 장정구 유명우 등 '하면 된다'의 정신으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복서들은 산업화의 상징이자 선진국을 추격하며 세계무대를 향해 존재를 드러내던 한국 사회의 모습이기도 했다. 세계챔프 탄생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거국적으로 후원한 것이나 전두환 대통령이 챔피언이 된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하던 장면도 그런 시대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으리라.

열광의 또 한 켠엔 걸출한 세계 헤비급 복서들의 피 튀기는 삼국지가 있었다. 그 한 축이 프레이저였다. 1964년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프레이저는 1970년 세계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3년 뒤 포먼에게 KO로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러나 팬들은 알리와의 세 차례 '세기의 대결'로 그를 더 인상깊게 기억한다. 1971년 뉴욕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1차전은 심판 전원 판정승. 프레이저에게 알리를 이긴 최초의 선수라는 명예를 안겨줬다. 그러나 이후 두 차례 맞대결에서는 졌지만 모두 복싱사에 남을 명승부전이었다.



프레이저는 자신을 '고릴라'라며 조롱한 알리에 대해 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최근엔 알리를 모두 용서한다고 말했다 한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알리도 프레이즈의 회복을 빌며 매일 기도하고 있다는 보도다.

세월 앞에 장사 없고 죽음 앞에 원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노복서의 투혼을 빈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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