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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심심해야' 할 때다

김석하/특집부장

'생각하는 사람' 사라지고
'검색하는 사람'만 있는 세상
때론 '스마트 촉수' 벗어나야


#'스마트 시대'는 심심함을 없앴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사람은 모두가 바쁘다. 일을 하다가도 회의할 때도 화장실에서도 잠자기 전에도 신호대기 차 안에서도 걸으면서도 심지어 여행지에서도 '바쁘다'.

당최 심심할 틈이 없다. 모두 고개를 수그리고 열심히 만지작거린다. 그러나보니 중요한 것이 사라졌다. '생각'. 손가락이 바쁘다 보니 정작 머리가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급속한 스마트화(化)는 인간의 인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요즘 지식과 만남은 '로그인-검색-연결'이라는 시퀀스에 담겨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은 앞으로 그 가치가 몇 배는 뛰어오를 것이다. '검색하는 사람'에게 생각하는 모습은 기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각상에서 턱을 괴고 있는 오른손을 보고 '왜 그 손을 자판에 대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하는 신인류가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 생각 1: 스마트 시대는 소통을 낳았다고들 말한다. 혹자는 최근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트위터를 통해 시작됐다며 '스마트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연 그런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언제 어디서나 오지 않았나.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비약적인 발전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소통의 일차적이고 물리적 원뜻에 접근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의미인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차원에서는 부정적이다. 끼리끼리는 소통하지만 반대편과는 오히려 단절과 극단적 분열을 표면화한 측면이 많다. 중간중간 각종 음모론과 괴담을 뿌려 검색하는 사람들의 '심심함'을 없애준다.

또 무시해도 될 극소수의 궤변이 스마트 매개체를 넘나들며 확대.재생산돼 사회 담론으로 대우받으면서 시간과 열정을 허비하게 만들기도 한다. 만일 1930년대 독일(히틀러.나치즘)에서 스마트 시대가 열렸다면?

# 생각 2: 일상의 '스마트 촉수'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탈출구로 독서.여행이 있다. 행간과 자연에는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기술'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더 나간다.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 그저 창 밖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으란다. 낯선 장소를 바라보면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낯선 음식을 접하면 또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잠을 뒤척이다 보면 '내 생각'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책을 보면 거기에 빠져들고 그 틀안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 보통은 이렇게까지 생각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모든 스마트 촉수에서 로그 아웃하고 어떠한 읽을거리도 없이 여행할 수 있을까.

# 생각 3: 스마트 웹(거미줄)에 걸려있는 모두는 '똑똑한 박사'다. 하지만 인터넷의 지식을 베껴서 붙이는(copy & paste)데만 익숙한 '박사(薄士)'일 뿐이다. 넓고 깊은 박사(博士)가 아니라 옅고 얇을 뿐이다.

우리의 뇌는 라우터(router)에 연결돼 언제 어디서나 접속된 느낌이지만 사실 매우 공허하다. 시간을 들여 생각하지 않은 지식과 감성은 심오하지 않고 가슴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 옛날 철학자 작가 화가 음악가는 짧은 인생 동안 어떻게 그런 묵직한 지식과 감동을 일궜을까.

심심했기 때문이다. 우두커니 멍하고 있는 시간은 때론 격렬한 창조의 순간이다. SNS의 단말기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그 시간이 필요하다. 심심해야 '심심(心心)'하고 또 '심심(深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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