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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최루탄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김완신/논설실장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 최루탄은 낯설지가 않다. 대학가 민주화 운동으로 연일 교정은 최루가스에 쌓여 있었다. 굳게 닫힌 교문은 열릴 줄 몰랐고 최루탄 발사기로 무장한 전투경찰의 군상은 암울했던 시대의 초상이었다.

최루탄을 떠올리면 비오던 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던 전국 대학생 시위가 생각난다. 장대비는 그칠 줄 몰랐고 뿌연 하늘은 노란 연기로 가득했었다. 시위대 위로 셀 수 없는 최루탄이 뿌려졌고 젖은 옷에 묻은 가루는 여러 번의 세탁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당시 발표됐던 정하연의 소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에 빗댄 '최루탄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자조적인 체념이 대학가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30년전 대학가는 최루탄 가스와 함께 흑백의 풍경으로 사라져 갔다.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최루탄이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뉴스의 초점으로 등장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놓고 김선동 의원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FTA 찬성측은 '한국 헌정사상 최악의 폭거'라 비난하고 반대측은 '온 몸으로 표출한 국민의 분노'라며 옹호하고 있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룩했지만 이제는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졌다. 독재수호의 첨병이었던 최루탄이 반대로 민주주의를 추락시키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최루탄 국회' 소식이 외신으로 전해지면서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한국 국회를 지칭하며 "미국 연방의회보다 더 형편없는 입법기관이 최소한 한 곳은 있다"고 했다.

최루탄을 터뜨린 김 의원의 정치적 신념은 거론하고 싶지 않다. 입법의 주체인 국회의원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념을 관철시키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목적이 옳다고 해서 법이 용납하지 않는 수단이 정당화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위원이 법질서를 유린하고 사회적 금기인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친다고 해도 그 행위는 절도일 뿐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최루가스 살포가 문제가 됐다. 지난 18일 UC데이비스 월가점령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학생들에게 최루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비폭력적인 시위에 최루가스를 살포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즉각적인 관계자 처벌을 요구했다. 결국 사태 발생 3일만에 대학경찰서장 애니티 스피쿠사가 직위 해제됐고 경관 2명에게는 직무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마크 유도프 UC총괄 총장도 "대학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공권력 남용문제와 관련해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과 미국에서 최루탄 사태가 발생했지만 대처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최루가스 살포 관계자들을 즉시 징계하면서 비폭력 시위를 보장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한국 국회사무처는 해당 의원을 형사고발하겠다고 했지만 징계를 결정해야 할 윤리위원회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FTA비준안 통과를 주도했던 한나라당도 기습처리의 '원죄'로 적극적인 처벌을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루탄 투척을 영웅시하는 민주당과 국민의 눈치를 보는 한나라당. 80년대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젊은 대학생들의 눈물에는 순수가 있었지만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흘린 눈물은 그래서 저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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