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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데스밸리에서 삶의 길을 묻다

이종호/논설위원

주말 이틀 데스밸리를 다녀왔다. 사막 길은 적막했다. 마르고 거친 광야엔 잿빛 덤불들이 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풍경 속을 무심한 자동차는 또 하나의 소품이 되어 달리고 또 달렸다.

미국 생활 10년이다. 동부 서부 반쯤씩 나눠 살았던 덕에 이름난 관광지는 꽤 많이 다녔다. 물론 주마간산 점찍기였다. 그래도 감사한 일이다. 곤고한 이민생활 속에 제대로 한 번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아 보니 나의 미국 여행은 매번 심드렁했다. 알아야 보이고 보아야 사랑도 하게 된다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감동이 있을 리 없었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거기 같다며 푸념도 했다. 때론 장터같이 번잡했던 한국의 여행지가 그립기까지 했다.

그런데 10년을 살고 나니 이제야 뭔가 보인다. 듣고 읽고 부딪쳐 알게 된 미국의 역사와 풍물과 사람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 온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진가를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손 타지 않은 자연의 위대함도 하나 둘 느껴지기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빌 브라이슨은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에서 말했다. 이미 개발된 세계 대부분 지역과 달리 미국은 전 국토의 오직 2%만이 개발된 지역이라고.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48개주 지형의 3분의 1은 여전히 나무로 덮인 숲이라고. 그리고 그 대부분은 국립공원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그러고 보니 미국만큼 자연을 지키려 애쓰는 나라도 드문 것 같다. 있는 그대로를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그 정성이 나같은 이민자에겐 경이요 부러움이다. 데스밸리도 그랬다. 인공 시설물을 최대한 절제한 의도된 방치(?)가 흐뭇하고 가상했다.

단테스 뷰 포인트.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데스밸리의 광활한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꼭대기 전망대엔 거짓말처럼 아무 것도 없다. 우리식 사고로는 적어도 팔각정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하다못해 커피나 음료수 한 잔 마실 수 있는 간이 매점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간단한 표지판 두어 개가 전부다. 북미 대륙에서 가장 낮은 땅이라는 배드워터. 해수면보다 282피트(85.5미터)나 더 낮다는 데스밸리의 하이라이트다. 그런데도 덩그러니 안내판 두어 개에 초라한 간이 화장실 하나가 전부다.

그런 땅에 들어서 보았다. 기하학적 무늬의 하얀 소금밭이 가뭇없이 펼쳐진다. 수십만 년 햇볕에 바래고 바람에 씻겨 드러난 지구의 부끄러운 속살같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남극 얼음 바다 위에 선 기분이 이럴까. 두렵고도 황홀하다. 급하게 점만 찍고 와서는 도저히 느껴볼 수 없는 설렘이고 떨림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몰려드는가. 가을 겨울 봄 그리고 화씨 120~130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는 여름에도 끊임없이.

우리는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난다. 바쁘게만 달려온 삶에 쉼표를 찍기 위해서도 여행을 한다. 데스밸리는 그럴 때 제격이다. 이곳에선 누구나 현인이 되고 철학자가 된다. 아니 미국의 자연은 어디든지 그럴 수 있겠다. 천천히 조금씩 긴 호흡으로 다가갈 수만 있다면.

나이 50을 목전에 두니 여행도 어렴풋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다. 나태주 시인도 슬쩍 답을 일러준다. '풀꽃'이란 단 세 줄의 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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