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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2년' 통곡의 땅 아이티를 가다] 아슬아슬한 산비탈엔 토굴 같은 고아원이…

<상> 폐허 속 보금자리

햇빛도 거의 안 드는 실내
방 마다 널브러진 아이들
살았지만 너무나 가혹한 현실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던가
몰려나온 거리의 아이들
옷자락 잡은 채 매달리고…
글로벌 어린이 재단
이희숙 LA지부 전회장


"내 삶의 목표 뚜렷해져"


고아원이라고 찾은 곳이 위태로운 산비탈 빈민가 한켠의 조그만 거처다. 간판도 마땅한 출입문도 없으니 그저 토굴이나 다름 없다.

두 평이나 될까 싶은 시멘트 바닥에 카리브해를 달구는 햇빛도 좁은 출입구와 유리없는 창으로 들어오는 것이 전부다.

일행을 보고 입구로 몰려나온 아이들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올망졸망 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몰려 든 아이들은 스무 명은 족히 돼 보인다. 컴컴한 실내에 눈이 익자 이번에는 방 구석마다 널브러진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재앙을 겪고도 목숨을 부지한 대가치고는 아이들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던지 아이들은 이희숙씨(글로벌어린이재단 LA지부 전회장)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줄 줄 모른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볼을 맞대며 귀를 기울인다. 자신도 고아이면서 거리의 아이들을 데려와 돌보고 있는 청년 임마뉴엘의 안내로 들여다 본 뒤 쪽방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쪽의 커튼을 젖히니 숯 화로에 한 소년이 무엇인가를 요리하고 있는데 그곳이 화장실 겸 부엌이란다.

글로벌어린이재단의 전신인 나라사랑 어머니회가 창립된 것이 1998년. 한국이 IMF 사태를 맞아 늘어난 결손.결식 어린이들을 돕고자 어머니들이 마음을 모았던 것이다. 이후 수혜 대상을 전세계 어린이들로 확대하고자 모임의 이름을 바꾸고 그동안 북한.동티모르.수단.말라위 등 수많은 빈곤국의 어린이들을 도왔다.

2001년 우연히 할리우드의 제작자와 영화촬영 차 아이티를 찾았다가 이들을 만난 강영만 영화감독은 이후 10여 년 동안 이들의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지진이 났을 때는 닷새 만에 비상약과 구호품을 챙겨들고 단신으로 이들을 찾아갔던 그다. 그에게 이번 방문은 여섯번째다.

한시라도 빨리 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먹이고픈 마음에 고아원을 나선 이희숙씨와 강 감독의 발길이 바빠진다. 일행의 가이드이자 시큐리티 가드인 윌러를 따라 쌀과 마카로니 설탕 등 식료품을 트럭 한가득 사 실었다.

지금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어엿하게 가정을 꾸린 윌러 역시 10년 전 강 감독이 만났던 거리의 아이였다. 아이들을 부르러 보내고 도로변에 식료품들을 부려놓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삽시간에 몰려든 군중들이 나눠달라고 악다구니를 써대는 통에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이들을 피해 일행이 서둘러 트럭에 올라타고 윌러와 임마뉴엘의 제지로 가까스로 상황이 진정된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가 싶게 제 몸무게 만큼이나 나갈 포대들을 들고 끙끙대며 비탈길로 사라진다.

돌아오는 길에 기자의 요청으로 일행은 대로변 텐트촌으로 들어섰다. 상.하수도 등 기본적인 시설마저 있을 리 만무한 텐트촌은 지난 2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어느 것이 텐트이고 어느 것이 쓰레기 더미인지 얼른 분간이 안 된다.

마침 텐트 앞에서 딸의 머리를 빗겨 주고 있는 모녀를 발견하고 셔터를 누르자 경계의 눈빛이 가득하다. 뒤따르던 강 감독이 얼른 찍고 빠지자는 사인을 보낸다. 아니나 다를까 악취와 쓰레기 사람과 짐승(돼지 닭 개)이 혼재돼 있는 텐트촌 여기저기서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행의 보디가드로 나선 청년들의 눈에도 두려움이 가득하다.

쫓기듯 돌아나온 텐트촌 초입에는 조그만 조형물이 지진 전에는 이곳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공원이었음을 알려준다. 윌러는 이곳에만 300여개의 텐트에 1000여 명의 살고 있다고 한다.

이튿날 일행은 교외에 있는 또 다른 고아원으로 향했다. 매연과 경적소리 신호등과 중앙선조차 없는 도심을 비집고 나와 비포장길을 달려 한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미국인 선교사가 세우고 자원봉사차 와서 고아원 운영을 맡고 있는 백인 청년 제프리가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아이들에게 쌀과 부대식량 비타민 등을 내어 놓으니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캄사함미다'를 연발한다.

이틀 간의 긴 행장을 끝낸 우리들은 호텔 앞에서 윌러 일행들과 작별의 포옹을 했다. 산 두개를 넘어야 갈 수 있는 윌러의 고아원 몫으로는 성금 봉투가 전해졌다.

"와 보길 정말 잘했어요 항상 바쁘다고 미뤄 왔었는데 이번에는 이 일정을 먼저 잡았지요. 그랬더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번 일로 현지에서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진정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아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무엇보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삶의 목표도 더욱더 뚜렷해 졌고요." 힘든 일정을 마친 이희숙씨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다.

2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지진의 잔해도 어느 정도 걷혔다. 그에 따라 지진의 기억도 우리들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잔해가 걷혔다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까지 걷힐까. 언제 상처에 새살이 돋을 지 모르는 그들에게 지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이티 후원문의:글로벌어린이재단(415)285-1246

아이티=글·사진 백종춘 기자 jcwhite100@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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