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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기생충, 너도 예쁘다

이은미/미드웨스트대 TESOL 교수

“엄마, 엄마, 제 몸에 기생충이 있어요!”
 
1년 여 전의 일이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던 큰 아들이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용변에서 실같은 벌레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어보니 ‘촌충’에 감염된 것 같았다. 촌충에 감염되었을 때는 옷이며 이부자리 등을 깨끗이 소독하고, 구충제를 먹으면 대개 해결이 된다. 그래서 “학교 보건소에 가서 구충제를 타먹지 그러니?”라고 일러주었는데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일단 의사를 만나서 용변검사 및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구충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또 며칠이 지날 것이 아닌가? 고민을 하고 앉아 있다가 내게 한국산 구충제 딱 1인분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국에 다녀온 학생이 미국에서는 구충제 구하기가 어렵다며 내게 선물로 줬던 것이다. 그래서 그 길로 차를 달려 아들에게 가서 약을 먹였다.
 
그 해 겨울에 한국에서 가족이 올 때 나는 다른 것 말고 구충제를 많이 사다 달라고 했다. 나도 먹고 주변에 급한 사람이 생기면 나눠 주려고. 올해도 나는 작은 아들과 함께 종합 구충제를 한 알씩 먹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세대라면 학창시절 해마다 채변봉투를 채워 내던 일이나 혹은 ‘기생충 알’이 발견된 아이들의 이름을 선생님이 부를 때 거기에 내 이름이 끼면 어떻게 하나 근심하던 일들이 기억나실 것이다. 학교에서 주는 약과는 별도로 집에서 종합 구충제를 해마다 봄, 가을에 온 가족이 복용하기도 했었다. 온종일 흙장난을 하고 비누로 손을 자주 씻을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 우리들은 쉽게 기생충 감염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기생충 박멸이 우리 몸에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우리 몸에 살던 기생충들이 위생적인 환경과 구충제의 영향으로 몸에서 사라지면서 ‘아토피’나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났다고 설명을 하는 의사들도 있다. 인간이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 살게 되면서 면역계를 조절해주던 장내 기생충을 잃어버리고 기생충과 미생물들에 충분히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면역계가 모든 것에 과민 반응을 한다는 ‘위생 가설’도 등장했다. 이른바 알레르기,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같은 자가면역질환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기생충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사례를 소개한 학자도 있다.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정준호 지음)에서는 돼지 편충 알을 이용하여 ‘크론병’이라는 소화기 계통의 질환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소개된다. 이 질병은 장내 기생충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고 한국, 일본, 유럽 등 고소득 선진국에서 발견되는데 기생충 알을 약 대신 투여하여 질환을 치료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생충 알 값이 무척 비싸서 부유층에서나 그 의료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피부가 곪아 터지는 환자의 환부를 깨끗이 소독하는 데는 금파리의 유충인 구더기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금파리의 구더기는 환부의 썩은 부분만 깨끗이 빨아내고 생살은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위생도구로 환부를 소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몸의 질환을 화학제재가 아닌 기생충이나 기생충 알로 치료할 때의 장점은 이들이 우리 몸의 면역계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의 문제를 생명으로 푸는 것이 화학제재로 해결하는 것보다 부작용이 덜한 이상적인 방법이 된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지어진 피조물 중에 악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것은 악종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착하고 좋은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내 기생충조차도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우리는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기생충 학자들은 설명해 준다.
 
박멸이 아닌 ‘상생’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단지 기생충만의 문제일까? 신이 지으신 피조물은 모두 아름답다. 인간의 지혜는 생명의 말살이나 박멸이 아닌 ‘상생’ ‘조화’의 길로 더욱 나아갈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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