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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용(龍)은 어디서 태어나나

[LA중앙일보] 발행 2012/01/24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01/23 21:00

김석하/특집팀 에디터

용 나는 개천 사라진 세상 이젠 스스로 개천 만들어 날아 올라야 진정한 용
#. 동물은 각각의 전형적인 상징성을 갖고 있다. 신기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민족과 문화를 초월해 대다수의 동물은 동일한 심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사자=용맹. 여우=꾀. 돼지=미련 등이다.

신화 전설 우화 속담에서 주제.모티프로 반복돼 나타나면서 집단의 정신에 각인된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말대로 인간 정신에는 원형(原型)이 있나 보다. 본능과 함께 유전적으로 갖춰지며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보편적 상징. 그런데 유독 용은 다르다. 동서의 인식이 정반대다.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동물인데 반해 서양에서는 못된 마물(魔物)이다. '흑룡의 해'하면 서양인은 "올해 안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라고 여길 것이다.

#. 개인적으로 지난 주말 두 건의 '큰 일'이 있었다. 8학년 아들이 전자기타와 앰프를 사서 주말 내내 방구석에서 "띠잉.챙.끼익" 댔다. 또 수퍼보울을 향한 리그 챔피언십 풋볼 경기가 불을 뿜었다.

아들이 왜 갑자기 전자기타를 사겠다고 했는지 궁금했다. 묻지는 않았다. 4개월간 모은 용돈과 세뱃돈을 아낀 돈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연말연시 쓰고 싶은 일도 많았을 텐데 꾹 참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기특했다. 비오는 날 집안에서 종일 울리는 '삑사리' 전자음이 가슴을 건들였다. 게다가 풋볼 경기는 숨막히는 박진감 그 자체였다. 춥고 비바람 부는 경기장에서 모든 힘을 쏟아 붓는 선수들의 투혼에 몸이 움찔움찔 됐다.

#.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요즘엔 개천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면 어렵게 찾은 개천이 있는 곳에는 더 이상 젊은이가 없다. 잠룡들은 이미 서울 등 대도시로 떠난 지 오래다.

또 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른바 '-사'나 대기업 직원 즉 돈 많이 벌고 위치.권력이 좀 있는 사람? 당신은 변호사 의사 대기업 간부를 '용'이라고 부르는가. 내심 '노'라고 답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개천도 용도 없다. 만일 그래도 아직 개천과 용이 있다고 믿는 사람 구체적으로 그런 학부모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미꾸라지일 뿐이다. 사교육에 미친 듯이 돈을 써댄다. 뻘밭의 미꾸라지처럼.

최근 한 논문에 따르면 동아시안(한인.일본계.중국계)의 높은 SAT점수는 '학원'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용은 별로 없다. 미국에는 개천이 꽤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용'이 되기를 원하는 젊은이 그것을 강요하는 부모는 별로 없다. 그래도 그들에게서 많은 용이 태어난다. 사실 '그래도'가 아니라 '그래서'일 것이다.

#. 주말 두 건의 사소한 일이 크게 다가온 것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이다. 기타리스트와 풋볼 선수는 돈 버는 게 우선이 아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재미있고 신나게 하다 보니 돈이 따라온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는 감동의 아우라가 있다. 그 위치가 어떻든 그 사람이 용이다.

용은 돈과 위치를 좇지는 않는다. 개천은 개울이 아니라 미지의 흐름이다. 지금은 비록 졸졸 흐르는 물줄기지만 나중에는 거대한 흐름이 될 수 있다.

용은 실제가 아닌 창의력에서 태어났다. 개천과 용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하면 '진짜 용'은 창의력을 가지고 제 스스로 개천을 만들고 날아오른다. 개천에서 태어나는 것이 용이 아니라 개천(開天) 하는 게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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