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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키 작은 남자'의 대박 스토리

이종호/논설위원

#. '키 작은 남자'라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다. 연매출이 200억원(1800만달러)이 넘는다. 전문대를 중퇴한 25살 젊은이가 시작했다.

그의 키는 171cm. 요즘 젊은이들 평균 키에 한참 못 미친다. 그 스스로 키 작은 남자로서 무수한 애환을 겪었다. 비슷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키가 작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키 작은 남자들만을 위한 옷과 신발 등을 가져다 팔았다. 결과는 대박. 창업 1년이 못 돼 한국의 대표적인 의류 쇼핑몰이 됐다.

그러나 대박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요즘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작다고 느낀다. 키 180cm인 사람조차도 자기 키가 작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까지 쇼핑몰을 찾게 만들었다. 고객 조건을 키 160~180cm 남자로 정한 것이다. 90%의 남자들이 '키 작은 남자'의 고객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 '개그콘서트'라는 TV프로가 있다. 웃을 일 많지 않은 시대에 웃음을 듬뿍 나눠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중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사마귀 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코너를 즐겨 본다. 날카로운 세태 풍자와 상식을 비트는 해학이 좋아서다.



'불편한 진실'이란 코너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코너가 나는 가끔은 불편하다. 진행자 황현희는 작은 키 때문에 늘 무시당한다. 키 큰 출연자들은 그의 키높이 구두를 벗기거나 깔창을 뺏어 던지며 조롱한다. 카메라는 '키 작은 남자'의 굴욕(?)을 보여주고 관객들은 그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즐거워만 할 장면인가.

요즘 한국에선 키 180㎝ 넘는 남자들만 '위너(winner 승리자)'로 불린다. 나머지는 모두 '루저(loser 패배자)' 취급을 받는다. '불편한 진실'은 이런 세태를 코미디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타고난 신체 조건을 희화화하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같다. 안 그래도 차별이 만연한 나라다. 학력차별 나이차별 남녀차별 빈부차별에 요즘은 인종차별도 심상찮다. 거기에 이젠 방송이 앞장서서 외모차별까지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 신체적 특성으로 우열이 정해지는 사회는 그만큼 비문명 사회라는 증거다.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닌 조건들로 인생의 많은 것이 결정되는 사회는 그만큼 불공정 불공평한 사회다. 약한 자 작은 자 부족한 자를 품을 줄 아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아직도 미국이 희망이 있는 것은 그나마 이런 정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 키가 남자는 161.1cm 여자는 148.9cm밖에 되지 않았다는 서울대 의대의 연구 결과다. 2010년 한국인 평균 키는 남자 174cm 여자 160.5cm였다. 그러니 300~400년전 조상들은 지금 우리보다 10cm이상 작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70년대까지도 한국 남자 평균 키는 170cm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루저'였던가. 지금의 한국을 만든 주역들은 모두 그들 '키 작은' 우리의 부모 조상들이 아니었던가.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확실히 키가 크다. '체력은 국력'을 넘어 '국력은 체격'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진짜 국력은 번듯한 외모가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량과 배려에서 출발해야 한다.

쇼핑몰 '키 작은 남자'의 권명일 사장이 좋은 예다. 그는 키가 작아 괴로워하는 남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팔아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키 작은 사람들의 한숨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꿔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이 진짜 멋진 사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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