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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말로 독을 뿜는 사회

구혜영/특집팀 기자

TV속 독설은 참 멋져 보인다.

언제부턴가 독설(毒舌)이란 단어는 유머와 카리스마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썼다.

'너 따위에겐 관심없다'는 김구라식 어법은 통쾌하고 덜덜 떠는 오디션 참가자에게 '외모나 신경 쓰라'는 작곡가 방시혁의 한마디는 그럴 듯하다. '애들도 정치하느냐'고 비꼬는 말은 소신 발언이고 쩜오(1.5인자)나 겉절이(겉도는 이) 같은 마음 아픈(?) 수식어는 날카로운 재미다. 각종 포털 사이트엔 독설 잘하는 방법을 묻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일상생활에서의 독설은 성공을 핑계로 참아내야 하는 관문이다. 어른이 됐다는 증표이자 '다 널 위해서'라는 밑밥이 깔려있다.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상사와 부하 등 상하관계가 뚜렷한 곳에는 반드시 독설이 난무한다. 묻고 따지는 것은 없다. 다 그렇게 살아왔다는 말로 어설픈 위로를 한다. 마치 그것이 청춘인 양.

독설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한 말이다. 독설에 대한 열광은 언어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어이없는 행위일 뿐 그 어떤 교훈도 줄 수 없다. 독설이 줄 수 있는 건 또 다른 독기와 절망밖엔 없다.

독설의 피해 현황은 암담하다. 최근 초.중.고교생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교폭력 실태에 따르면 학생들은 신체적 폭력(16.6%)보다 협박.욕설과 같은 언어폭력(20.6%)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현재 청소년 7명 중 1명꼴로 욕설이나 놀림을 받고 있으며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직장 내 언어폭력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이 비꼬는 말(68.1%) 인격모독(65.3%)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호칭(43.6%) 공개적 호통(33.1%) 성희롱(17.5%) 등을 당한다.

SNS를 통한 독설도 선을 넘어 전체 이용자의 46%가 모욕 내지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다. 바야흐로 독설에 파묻힌 사회다.

더 끔찍한 사실은 독설이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들겨 맞는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힌다. 우울증 정신질환은 물론 자살이나 피를 부르는 복수가 계속된다. 내 삶은 엉망진창인데 날 괴롭혔던 사람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사는 것을 볼 수 없어서다.

가해자는 당당할 수 있다. '나는 뒤끝이 없다'든지 '우리 사이에 왜 그래?'등 상황수습이 가능하다. 하지만 당한 사람은 잊지 않는다. 잊을 수 없다.

독설은 차별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다름을 인정할 수 없어 말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 평균 내뱉는 말은 2만5000마디. 그중 분명히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다. 이 세상 70억 인구 중 똑같은 존재가 있던가.

세 살 때부터 배우는 상식을 어른들은 계속 잊어버린다. 아는 것을 제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 값싼 독설은 비판이 아니다.

독설(毒舌)은 홀로 독설(獨說)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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