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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선택은 괴로워

이은미/미드웨스트대 TESOL 교수

중년의 미국 학자 베리씨는 청바지 몇 벌 있는 것을 십 년 넘게 입었다. 이것도 오래 입다 보니 헤어지길래 모처럼 갭 (GAP) 매장에 청바지를 사러 나갔다.

‘갭’은 ‘올드 네이비’와 더불어 미국 서민들의 대표적인 옷 가게로 자리를 잡은 매장이다. 그런데 청바지 진열대 앞에 선 베리씨는 한참을 서성였으나 도무지 옷을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청바지들을 쌓여 있는데 그는 도무지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열대를 들여다 보자. Straight, Boot, Original, Skinny, Standard, Easy, Slouchy Slim, Loose, Skater Chino, Cropped Jeans…. 그 외에도 아직 정체 불명의 바지들이 널려있었다. 결국 미국 심리학계를 주름잡는 학자 베리씨는 직원의 도움으로 아주 평범한 ‘진짜 청바지’를 간신히 하나 고르는 데 성공했는데 집에 와서도 그는 전혀 개운치가 않았다. 자기가 사온 것이 정말 그 중 제일 나은 것인지 혹시 거기에 정말 자기가 원하던 물건이 남아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 남편은 미국 대학에서 석사 공부를 마쳤고, 미국 근무만도 3년 넘게 하고 영어도 한 가닥하는 사람인데 가족과 외출을 하거나 식당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모든 거래를 아이들이나 아내에게 일임한다. 도무지 영어가 성가시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식당에 간다고 치자. 햄버거 하나를 주문했다고 치자. 고기는 어떻게 익히기를 원하는가, 햄버거에 치즈를 추가할 건가, 어떤 치즈를 추가할건가, 야채는 무엇을 넣어줄까, 사이드 메뉴는 뭘 선택할래, 물에는 얼음을 넣어줄까말까, 커피에는 크림과 설탕도 필요한가 등등 자질구레한 질문을 알아듣고 일일이 순간순간 판단하고 선택하고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로서는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한국식으로 알아서 한 상 차려다 주면 얼마나 좋을까?
 
앞서 소개한 베리씨의 청바지 구매 사례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이라는 책의 저자 베리 슈워츠 (Barry Schwartz) 박사가 서술한 그의 경험담을 정리한 것이다. 내가 그의 사례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종종 느끼는 곤혹스러운 경험들이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민자이기 때문에, 혹은 원어민이 아니라서 느끼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용 청바지 한 장 맘에 드는 것을 산다는 일이 저명한 미국인 학자에게도 간단한 일이 아니며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일인 거구나 깨닫게 된다.
 
최근에 내게도 스마트폰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애플리케이션들 중에서 내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항목들을 지우려고 하는데 기본설정이라 지워지지가 않는다.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과 씨름하느라 며칠을 보냈다. 그뿐이 아니다. 내게 스마트폰이 생겼다는 것을 발견한 지인들이 이러저러한 앱을 사용하라고 추천들을 한다. 대개 내 삶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나는 꼭 필요한 것만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이런 내가 답답한 사람처럼 비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뭐든 복잡하게 나열되는 것들이 피곤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것이다. 영문으로는 ‘More is less’라는 표현이 있다. 청바지 매장에 너무 많이 널려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바지들은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스마트폰에 너무 많이 깔려있는 앱들, 페이스북에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는 얼굴들, 수 십 가지의 케이블 TV 채널들, 너무 많이 날아오는 우편함의 광고 우편물들, 일반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카푸치노, 카페 라테, 에스프레소, 톨, 라지, 벤티, 스킴, 레귤러 밀크 등 너무 많은 선택사항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판단과 선택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과정이라고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거나 혹은 삶을 단순화하면 된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내 갈 길을 그냥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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