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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거룩한 명분과 무고한 희생

김완신/논설실장

지난 주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코란 소각' 사태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까지 탈레반의 보복공격과 자살테러로 3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이슬람 단체도 성명을 통해 '코란 소각은 전세계 이슬람을 모욕한 야만적 행위'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 교도에게 코란은 경외와 자부심의 상징이다. 코란이 아랍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 이를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랍어로 쓰여진 코란을 읽어야만 경전이 주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며 번역된 책은 '경전'이 아닌 '해설서'로 강등시킨다.

더러운 손으로 코란을 만지는 것을 금하고 코란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처벌 받을 수 있는 곳이 이슬람 사회다. 코란 소각은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이고 신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할 극악일 수밖에 없다. 특히 서방 문화권의 미군에 의해 코란이 불탔다는 것은 이슬람권의 공분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서방세계가 이슬람권 정서를 이해 못해 발생한 갈등은 예전에도 있었다. 1988년 영국의 소설가 살만 루시디가 무함마드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를 발표하자 이듬해 이란의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루시디에 대한 사형선고와 함께 체포 현상금을 내걸었다. 10년 후 사형선고가 철회될 때까지 루시디는 도피생활을 했고 그 기간 동안 '악마의 시' 일본어 번역자가 목이 잘려 살해당하는 등 각국의 번역자들이 습격을 당했다.



2005년 덴마크 일간 '윌란스 포스텐'이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초상을 신문 만평에 게재했을 때도 각지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충돌로 수백명이 사망했다.

코란과 함께 무함마드는 이슬람의 상징이다. 무슬림법은 무함마드의 초상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제작하는 것을 금한다. 종교적 우상화를 경계하는 것이 이유지만 이면에는 무함마드의 신성을 인간이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경건함이 있다. 16세기에 제작된 무함마드가 승천하는 그림에도 형체만 있고 얼굴은 없다.

코란 소각은 이슬람법을 넘어 신앙적 경외로 금지된 행위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태가 발생하자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서한을 통해 공식사과했다. 아프간을 비롯한 전세계 무슬림의 신앙적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나 공화당의 대선후보들은 일제히 오바마를 비난하는 포문을 열었다.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은 "코란 소각은 실수였다"며 "고의가 아닌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대통령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실수"라고 주장했다. 미트 롬니 전 주지사는 "미국은 아프간 국민의 자유를 위해 커다란 기여를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은 미국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공화당 후보들은 이번 사태를 아프간 철군과 연결시켜 대선에서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그러나 코란 소각 문제는 선거에 이용하기에는 너무 민감한 종교적 사안이고 잠재적 폭발력도 엄청나다. 대선의 논쟁거리로 적절치 않다.

역사적으로 종교적 이유로 발생한 전쟁은 기간이 길고 싸움도 치열했다. 12세기에 시작된 유럽 기독교와 이슬람의 십자군 전쟁은 200여년간 계속됐다. 신의 이름으로 전부가 용서되고 종교적 믿음으로 모든 악행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코란 소각이 기독교 국가에 대한 이슬람권의 해묵은 감정에 불을 지펴서는 안 된다. 그런 감정은 항상 '거룩한 명분'으로 무고한 피를 불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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