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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말이 칼이 되는 세상

김완신/논설실장

보수 언론인 러시 림보가 오바마의 건강보험정책을 지지하는 여대생을 '창녀' 등의 막말로 지칭한 것에 대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달 조지타운대 법과대학원생인 샌드라 플루크가 연방의회에 출석해 건강보험 혜택에 피임을 포함시켜 줄 것을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극우 논객 림보는 그의 방송에서 플루크를 '잡년' 등으로 부르며 "우리가 당신의 성관계와 관련해 (피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당신은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림보의 발언에 여성과 시민단체의 비난이 쇄도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강력한 유감 표시와 함께 자신의 건강보험 정책을 지지해 준 그 여대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

비난 여론에도 림보는 '용어 선택'에 실수는 있었지만 오바마와 민주당의 건강보험은 잘못된 것이라며 공화당의 정책을 옹호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건강보험에 대한 보수진영의 의견을 명확히 할 필요하지만 이런 방식은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매케인 상원의원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건강보험과 관련한 공화당의 공식적인 반론은 '창녀'와 '잡년'에 묻혀 논쟁에서 멀어졌고 민주당에게는 호재가 됐다.

미국과 한국에서 막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림보 이전에도 지난달 20일 리처드 세불 몬태나주 연방판사가 흑인을 개에 비교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을 모욕하는 말을 이메일로 친구들과 지역 일간지에 보내 논란이 됐다. 세불 판사의 사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판사로서의 공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한국에서도 현직 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카 빅엿'이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었고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인들의 원색적인 비난의 말들이 끊이지 않는다.

말의 폭력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신체적 폭력과는 달리 언어 폭력은 후유증이 크다. 수치와 모멸감을 주어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준다. 신체적인 폭행은 상처가 아물고 물리적 통증이 해소되면 잊혀지지만 언어 폭력은 고통의 주체가 기억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지우기가 힘들다.

UC버클리 신경심리학과 메리언 다이아몬드 교수는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듣게 되면 신체적인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회 생활에도 막대한 지장을 준다고 한다. 반면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의 지적처럼 인간은 사용하는 언어에 구속될 수가 있어 욕설을 자주 사용할 경우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결국 막말이나 비난의 언어는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 모두에게 해롭다는 뜻이다.

언어에도 '내성'이 있다. 예전에는 일상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했지만 말이 내성을 갖게 되면 점점 더 자극적인 용어가 필요하다. 특히 남을 비방하거나 해치는 말은 더욱 강렬해지고 금기의 선을 넘을 수밖에 없다.

올해는 미국과 한국에서 선거가 실시된다. 벌써부터 정당간 후보간 말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선거의 계절에는 결코 우호의 말들은 들리지 않고 원색적인 비난의 말들이 쏟아진다. 더욱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익명성에 숨어 타인을 '죽이는' 말도 서슴없이 등장한다.

인간의 소통방식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은 말이다. 음악과 미술 작품의 메시지도 결국은 말로 정의 되고 문자로 쓰여져 전달된다. 그러나 언어가 갖는 소통의 용이성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 세상에서 말 보다 더 독해질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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