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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는구나

[LA중앙일보] 발행 2012/03/15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03/14 18:11

이종호/논설위원

삶의 고비마다 함께 했던 옛 노래의 가치 소중해 요즘 뜨는 K팝도 그랬으면
#. 지난 주말 어떤 모임에 갔다. 1980년대에 20~30대를 보낸 사람이 대부분인 부부 모임이었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추억여행 쪽으로 흘렀다. 그러다가 한 부부가 기타를 치며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정태춘-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 3'이라는 노래였다.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 / 깊은 밤에도 잠 못 들고 그대 모습만 떠올라 /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 / 내 온 마음을 사로잡네…." 다들 울컥해졌다. 그리고 아름답고 애잔한 가사를 곱씹으며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라며 지그시 눈들을 감았다.

좋은 노래 속엔 세파에 찌들어 무덤덤해진 마음을 이렇게 녹이고 되살리는 힘이 있다. 이것이 세월을 이겨내는 대중가요의 마력이다.

#. 언제부턴가 한국의 대중가요를 K팝이라고들 한다. 한류 붐을 타고 세계적인 명성도 얻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외국에 나와 돈도 벌고 인기도 끄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노래가 도무지 편하지가 않다. 너무 빠른 템포와 기계음에 정신이 내둘리기도 하거니와 가사도 곡도 맘에 와 닿지 않아서다. 그러니 '소녀시대'니 'JYJ'니 하는 그 유명한 그룹의 노래조차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 없다.

구세대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가 없다. 난 지금도 칠공팔공 가수들이 친근하고 70~80년대 노래에 더 정이 간다. 여전히 조용필을 듣고 송창식을 읊조린다. 시보다 더 시적인 가사가 좋고 듣고 또 들어도 싫증나지 않은 멜로디가 좋기 때문이다.

잘 듣지를 않으니 요즘 노래도 그런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조차 힘든 젊은이들이 반복되는 멜로디에 비슷한 춤과 퍼포먼스로 노래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애써도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는다. 말도 되지 않는 가사로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음률로 국적불명의 외래어로 뒤죽박죽된 가사에 감정이입이 될 리도 없다.

그래도 이런 노래가 좋다며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것이 세대차이일까.

그렇다고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난해 '나는 가수다' 성공 이후 아름다운 가사와 서정성 넘치는 멜로디의 옛 노래들이 크게 유행했던 것처럼 감동을 주는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갈급함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 주말 모임에서 정태춘-박은옥 노래를 만난 이튿날 공교롭게도 그들 부부가 10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미 50대 중반을 넘긴 그들이다. 데뷔 초 음유시인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지만 80년대 후반부터 노래의 방향을 바꿔 문화운동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그 쪽의 노래들을 주로 불렀다. 지난 20여년 기존의 팬들과는 다소 거리가 생긴 이유다.

기사를 읽으면서 젊은 날 좋아했던 가수가 이제는 '투사 정태춘'보다 '가객(歌客) 정태춘'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노래가 때론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에게 기쁨과 슬픔이 되고 친구가 되고 위안이 될 때 훨씬 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세월이 가면 가수도 늙고 노래도 늙는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특히 우리의 삶 고비고비마다 스며든 옛 노래의 기억은 언제까지나 젊은 향기로 남아 있다. 단 가슴을 적시는 가사와 영혼을 두드리는 곡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 하나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요즘의 젊은 K팝 가수들은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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