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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인간소외의 의미

얼마 전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 고려대학생이 술 취한 일본인을 구하고자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죽은 ‘살신성인’을 몸소 보여준 후 일본열도가 온통 후끈 달아오른 일이 있었다. 이것은 인간성 발현의 극치이고 또한 이것이 때묻지 않은 한국인의 인간상이다.

반면에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가 나면 잘, 잘못은 고사하고 “I'm Sorry”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것은 단적으로 미국사회가 얼마나 인간소외의 사각지대에 있는가 말해준다.

한 미국인 ‘이비인후과’의사가 해수욕장 가는 길에서 겪은 일이다. 차 사고가 나서 여학생이 숨을 못 쉴 지경의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이 의사가 자기가 호주머니에 있던 보통 칼로 기도를 절개하여 숨을 쉬게 하고 응급실로 보내어 그녀가 살아났다.

그런데 이 의사는 1주쯤 뒤에 고소장을 받았다. 법원에 출두하여 증언해야했다. 이유인즉 다 죽어 가는 여학생이 살아나서 이제는 이 상처가 대단히 보기 싫어서 고소한 다는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다. 보스턴 근방에 사는 할머니가 같이 사는 남편인 할아버지를 고소했는데 사연인 즉 이러하다. 그 날 밤에 눈이 많이 왔다. 그래서 이 할머니가 밤에 나가다가 넘어져 대퇴골 골절상을 입었다.

그리고 고소장에 말하길, 남편이 자기 해야될 의무(눈 치우는 것)를 다하지 못하여 자기가 넘어져 다쳤으니 물어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험’이 관계되어 있고 남편을 고소해야만 돈을 탈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나, 약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이 약을 먹고 효험을 보았으니 당신도 내 증세와 비슷한 것 같소, 한번 드셔 보시오. 하고 약 한 첩을 초면이라도 나누어주고 , 또 받는 사람도 별 생각 없이 먹는다. 이러한 장면은 미국에서는 어림도 없다.

심지어 약사도 의사 처방이 필요하다고 규정된 약은 처방 없이 줄 수도, 팔 수도 없다. 간혹, 잘못 주어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사회 전반이 쓸데없는 일에 관계되어 손해보기 싫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이다.

그래서 여타 선진국에 비하여 너무 고소사건이 많다. 이것은 인간소외의 결과이며 또 그 원인이기도 하다.

인간소외란 일상생활에서 인간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조직과 기계가 인간보다 우위를 점하여 인간이 오히려 조직과 기계에 종속되어 결과적으로 ‘인간과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의 관계가 무관심, 소원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의 역사는 루이스 맘포드가 ‘인간조건’에서 간파했듯이 과학의 발달과 무기의 우수함을 앞세워 타 문화권을 침략, 정복, 파괴하는 3박자 야만의 역사였다. 그러나, 이제 그 서양기계문명의 종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우체국에서 해고당했다고 평소 같이 일하던 동료들에게 무차별 총기를 난사해서 수 십 명이 살상된다. 같은 학교 급우에게 총을 쏴서 수명이 죽는다. 인간과 신과의 관계도 이제 실낱같은 연결이 되었다.

서구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기 있는 종교 지도자는 이제 교황이 아니라 ‘달라이 라마’같은 티벳의 수도승들이다. 기독교나 카톨릭교는 본 고장에서 설자리를 잃고 아프리카나 남미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양문명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서양의 ‘르네상스’는 흔히들 ‘자아의 자각’과 ‘인간성의 회복’을 의미하는 인본주의와 휴머니즘이란 말로 특징 지운다. 서양의 정신 분석치료에는 우리의 마음 제일 밑바닥에 본능(Id) 즉 욕심이 있고 제일 뒤에 양심(Superego)이 있다고 한다.

본능과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막는 양심 사이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자아(Ego)이다. ‘르네상스’는 주로 자아의 해방 이라기 보다 본능 즉 욕심의 해방이었다. 이는 돈이 된다면 못 할 것이 없다는 사고를 낳았다. 따라서 돈을 벌자니 욕심이 나고 그러니 못할 일이 없어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너무 바쁘다. ‘돈’이 모든 사람의 등을 떠미는 형국이다. 이렇게 되어 인간성을 잃고 인간의 기계화, 탈 인간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이다. 인간소외를 막기 위해서 우리는 자아(Ego)의 기능을 발달시켜야 한다. 그래서 본능(Id)이 제 멋대로 날 뛰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자아(Ego)는 초자아(Superego) 즉 양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환언하면, 내가 해야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교육부재’이고 ‘가르칠 수 있는 종교부재’ 이고 ‘정당한 행위 부재’, ‘아버지와 스승의 부재’ 이라 ‘전인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암울한 이 서구중심 사회에 들려오는 한 한국 젊은이의 살신성인의 삶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강자구 스토니브룩 한국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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