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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잊지 못하니 용서도 어렵다

[LA중앙일보] 발행 2012/04/17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04/16 18:54

김석하/특집팀 에디터

김구라 잠정은퇴 선언 통해 10년전 '옛일'도 되살아나는 인터넷 세상의 두려움 실감
#. 과거가 사라진 세상이다. 후미진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런 빛깔을 띠고 있는 것이 과거의 모습이라고 여겼는데 더 이상 아니다. 이젠 반짝반짝 생생한 천연색이다. 과거를 찾기 위해 공을 들여 도서관이나 스크랩을 뒤질 필요도 없다. 클릭 한 번이면 당장 현재가 된다.

사실 과거는 잊혀지는 것이 순리다. 그 망각의 시간은 축복이다. 온갖 상처와 치욕 창피 실수를 그때 그 당시의 기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행복마저도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지금이 되레 불행해 질 수 있다.

과거가 현재 시제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바꿔 말하면 '지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모든 사실과 정보가 손바닥 안에 담기는 요즘 세상의 편리함은 때론 잊혀지고 싶은 잊혀져야 할 것도 잊혀지지 않는 불편함도 낳았다. '누구에게나 하나 정도의 비밀스러운 과거는 있다'는 낭만적 수사는 죽은 말이 됐다.

#. 방송인 김구라가 잠정 은퇴했다. 2002년 한 방송에서 창녀를 정신대(당시 용어)와 동일시하는 발언이 '걸렸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 지존'으로 군림하며 막말을 쏟아내고도 굳건히 생존한 그였지만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한국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정신 나간 헛소리였다.

이번 총선에서 김용민의 과거 막말이 불거질 때 조만간 김구라에게도 불똥이 튈 것으로 예견됐다. 막말이 이슈화.쟁점화되고 박빙의 선거 판도에 영향을 끼치자

내친김에 누군가는 그의 과거를 '또' 추적할 것으로 봤다. 결국 그는 '잡혔고' 사실상 재기불능 상태가 됐다.

돌이켜보면 그가 공중파로 넘어오면서 지난 일을 용서받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한' 과거를 사죄했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그는 막말과 욕설보다는 '독설가'로 방향을 틀었고 밋밋한 방송에서 '매운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승승장구해 왔다. 그런데 이런 게 숨어있을 줄이야.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09년 버지니아주 한 고교에서 학생들과 만나 인터넷상에 무엇을 올리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는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나중에 다시 나올 수 있다"며 "청년기에 올린 충동적인 글이나 사진 등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오바마가 이 말을 한 날은 마침 인기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 박재범이 '과거'로 인해 쫓겨나다시피 시애틀로 귀향한 날이었다.

#. forget과 forgive. 문제가 있거나 논란의 대상이 된 연예인들이 '잠정' 은퇴하겠다는 것은 시청자가 forget하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forget이란 단어는 없다. 과거가 희미해져야 관용이 끼어들 틈이 있는데 잊지 못하니 용서하기도 어렵다.

사회적 관용은 인터넷 그물망에 걸리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 설령 빠져나가도 그물에 패인 상처는 매우 깊다. 김구라는 심경을 밝히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일을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했다"고 말한다. 그의 고백에 일말의 측은지심도 생기긴 한다.

자숙을 누차 이야기했지만 도를 넘어선 이번 막말은 그를 '언포기븐(unforgiven)'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빨리 사죄하고 하차해서 차라리 낫다. '제수씨' 사태의 김형태 의원은 '포기븐'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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