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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엉뚱한 것에 '난리'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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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2/04/20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2/04/19 16:54

부소현/JTBC LA 특파원·차장

"지동 초등학교 좀 지나 못골놀이터 전 집인데요. 성폭행당하고 있어요." 지난 1일 경기청 112 센터에 걸려온 전화의 일부 내용이다. 듣지 않고 읽기만 해도 긴박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전화를 받은 신고센터와 경찰은 목숨을 건 이 전화를 담담하게 받았다. 신고 전화를 받은 직원은 몇번씩 주소를 되물어 봤고 전화를 공청한 경찰은 "남자 목소리 들린다. 부부싸움인데"라는 한심한 소리까지 했다. 결국 신고를 한 20대 여성은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사건 후 경찰은 일반에게 7분36초간의 통화 전문만 공개했다. 피해자의 음성이 담긴 녹취는 유가족에게만 들려줬다. 이를 들은 유가족은 격노했다. 유가족은 JTBC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범인이 문을 따고 들어올 때 우리 아이가 한 말은 말이라기보다 '절규'였다"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피해여성을 결박하기 위해 테이프를 찢는 소리 이 과정에서 몸부림치는 소리만으로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신고전화를 받은 경찰이 '난리'를 쳐야 맞지 않을까?

한국은 작은 일에도 쉽게 난리가 난다. 인터넷에 막말녀 개똥녀 사진만 떠도 난리다. 정치권은 더하다. 김용민 막말에 난리 조용할만 하면 터지는 뇌물수수에는 언론과 여론이 들끓는다. 정치 사회 경제 연예계를 막론하고 한번 난리가 나면 나라 전체가 들썩인다.

어느 나라에서도 난리는 난다. 미국도 정치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연예계 뉴스는 언제나 뜨겁다. 크고 작은 난리는 장소를 막론하고 항상 일어난다. 이 가운데 미국이 가장 대놓고 난리를 피우는 곳은 사건.사고 현장이다.

911 신고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난리는 시작된다. 전화를 걸어놓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일단 가고 본다. 어디 그냥 가나. 경찰차 소방차가 있는 대로 소란을 떨어댄다. 사건현장은 또 어떤가. 취재를 가면 짜증이 날 정도다. 사방에 접근금지 선을 쳐두고 발도 못 들여 놓게 한다.

물론 이런 경찰의 대응이 간혹 문제가 되기도 한다. 최근 경찰의 지시를 무시하고 도망가다 총에 맞아 숨진 19세 대학생의 비극이 단적인 예다. 피해자는 당시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져 경찰의 과잉대응이 또 도마위에 올랐다.

작은 사건과 사고에도 난리를 치는 미국경찰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신고전화에 안이하게 대처한 한국경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난리를 치지 않은 한국경찰이 야속하다. 전화를 받고 난리를 좀 쳤으면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피해여성은 신고 당시 자신이 납치돼 있는 위치를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이 지역에 출동한 경찰은 그러나 사이렌도 울리지 않고 탐문수색도 문을 두드려 응답하는 곳만 했을 뿐이다. 만약 이날 경찰이 주변 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경찰 병력을 총동원해 난리를 피며 탐문수색을 했다면 여성이 살해되기 전 범인을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번 사건으로 한국 정부는 신고전화 통합 신고자 위치 검색 등 부실한 대응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달린 문제다. 난리를 피워서라도 하루빨리 고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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