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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4.29 폭동] 피해자 한명숙 씨

[LA중앙일보] 발행 2012/04/20 미주판 4면 기사입력 2012/04/19 19:53

투병 남편 잃고 비통한데…이어받은 리커 잿더미로
당시 LA타임스 대서특필…"타인종과 소통 중요해요"

19일 오전 중앙일보를 방문한 한명숙(71)씨가 1992년 4·29 폭동 당시의 암담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일 오전 중앙일보를 방문한 한명숙(71)씨가 1992년 4·29 폭동 당시의 암담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지만 상처는 아물어 가네요."

지난 1992년 4.29 폭동의 피해자 한명숙(71)씨는 아직도 20년 전 그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아니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당시 한씨는 8가와 버논 인근에서 리커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었다. 1989년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갑작스레 경영 일선에 나선 것. 인생의 동반자를 잃은 슬픔과 충격 속에서도 한씨는 리커스토어를 지켰다.

하지만 1992년 봄 그는 더이상 리커스토어를 지킬 수 없었다. 상실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4.29 폭동이었다.

한씨는 "리커스토어 일을 도와주던 조카가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길래 영문도 모른 채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라며 "크렌셔 길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올 때 이미 길가에는 흑인들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그날 밤 단골 고객이던 흑인 친구한테 연락을 받았다"라며 "그 친구가 '가게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을 했는데 군중을 막아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폭동 다음날 가게는 잿더미로 변했다. 한씨 이야기는 당시 LA타임스에도 크게 보도됐다. 카니 강 기자가 한씨를 밀착 취재했다.

남편을 잃고 가게까지 날린 한씨는 망연자실했다. 피해액은 8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씨는 타인종의 문화를 이해하고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는 "폭동 이후 한 흑인 목수를 만났는데 '한인들은 백인들처럼 흑인들을 무시한다. 또 흑인들이 가게에 가면 한인들은 뭐 훔치는 것 없나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말하더라"며 "두 인종 사이에 오해하는 부분이 많았고 이 모든 것이 문화 차이와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한씨는 미국 문화와 더 친숙하려 노력했고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의사소통 능력도 키웠다.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백인 동네인 윌셔와 하우저의 한 고층빌딩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열고 후회 없이 일했다. 이후 간호사 경력을 살려 개인 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한씨는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아왔다"며 "내가 선택하고 내가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흑 관계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한씨는 "한흑 관계가 표면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깊은 바닥에서는 물과 기름의 관계"라며 "우리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그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한씨는 70대다. 빈손이나 다름없다. 연금에 의지하다 보니 때로는 경제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다.

한씨는 "사람이다 보니 20년 전 그때 만일 경제적 손실이 없었다면 '좀 더 편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며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충실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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