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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동포애

김외출 / '수필과 비평' 등단

미국의 경기 침체와 국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발생한 재정위기가 유럽의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으로 번져갔다. 2008년도 글로벌 경제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지구촌 전체로 번지면서 특히 남유럽은 쓰나미를 만난 것처럼 휘청거리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희망을 안고 태평양을 건넌 우리 교민들도 몇 년 전부터 고국으로 역이민한다고 들었다. 이것은 우리 가족과도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한국이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나라의 장래가 바람 앞에 촛불 같아 아들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좌절에 빠져들었다. 고심 끝에 미국에 사는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히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덕분에 일자리를 쉽게 얻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생각보다 봉급도 적고 밤늦도록 일을 해도 시간 외 수당은 엄두도 못냈다.

그 애는 몸이 허약하고 식성마저 까다로운데 고된 격무에 시달리니 건강이 염려되어 한국에서 사귀던 후배와 급히 결혼을 시켰다. 전공이 같은 며느리도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다시 하여 취업을 하게 되었다. 맞벌이를 하니 생활이 조금은 여유롭고 오순도순 잘 살아주어 어미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며느리가 아기를 갖게 되자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식구는 늘어나고 수입은 반으로 줄어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어렵게 자금을 마련하여 작은 코인라운드리를 운영했다. 처음에는 매상이 좋지 않았으나 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수입이 늘어났다. 그래서 은행융자를 받아 집도 마련하는 등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나 싶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웃에 아들의 가게 보다 배나 큰 코인라운드리가 새로 생기자 매상이 계속 줄어들었다. 아무리 이민생활이 팍팍하다지만 우리 교민들끼리 같은 업종을 지척에 개업하여 경쟁을 벌이는 상대가 야속했다. 동포 간에 최소한 기본 상도덕은 서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한인들은 장사가 좀 잘된다 싶으면 같은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결국엔 상대방은 물론 본인도 파산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 분도 큰 손해를 보고 가게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내 눈에 피가 난다는 우리 속담이 뇌리를 스친다.

그래도 아들은 위기를 잘도 견디었는데 최근에 더는 버틸 수가 없는지 임대료로 지급한 수 십 만 불을 포기하고 새해 초순에 라운드리가 고스란히 주인 손에 넘어갔다.

법정 스님은 일찍이 무소유를 실천하여 모범을 보였지만 범부인 나는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새웠다.

그런데 염려했던 아들은 오히려 어느 사람도 원망하지 않고 모든 걸 자기 탓이라 자책하면서 이번의 실패가 삶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스스로 다독이고 있다. 타국에서 얼마나 많은 삶의 질곡을 겪었기에 그토록 의연할까. 아마 실패의 아픔이 정신세계를 승화시킨 것이리라! 절망의 늪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그 애가 눈물겹도록 고맙고 대견하다.

먼 이국 하늘 아래서 핏줄이 그리워도 15년 동안 고국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하고 허리띠 졸라매고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이방인도 아닌 동포가 끼어들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교민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 할 소유욕을 버리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눈곱만큼이라도 내 동포의 처지를 생각했더라면….

유대인은 어느 가정에서나 어릴 때부터 작은 저금통을 만들어 주어 자선에 쓰게 하고 베푸는 것을 의무적으로 가르쳐왔으며 모든 유대인을 한 형제로 생각한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동포애와 인도주의적인 삶의 철학이 부럽다. 미국의 경기 침체로 젊은이들이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되어 캥거루족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월가 시위는 바이러스처럼 번져갔고 우리 교민 중 어떤 분들은 생활고로 티격태격하다 이혼도 불사한다니 슬픈 일이다.

아무리 삶의 고통이 가슴을 조여와도 희망과 꿈을 잃지 말아야 미래가 있을 것이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난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울 때일수록 가족끼리 합심하여 더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에너지가 시너지 효과를 이루어 고통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새해부터 해외에서 훈풍이 불어온다. 경제 전문가들은 유럽과 미국 경제가 꺼졌던 불씨가 다시 살아나듯 조금씩 회생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경제가 빨리 옛날처럼 정상화되어서 우리 교민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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