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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에릭 오…예술은 답이 아닌 질문에 담겨있다

여기 '그의 방(His Chamber)'이 있다.

그 방 속에 한 아이가 있다. 누군가의 내면에 감추어진 또 다른 자아이기도 혹은 그 누군가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주던 존재이기도 하다. 그 아이가 그려진 그림 속에서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자그마하고 간결한 이미지들이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담담한 일기가 되어주기도 괴로웠던 일상을 그린 자화상이 되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아름다운 연애편지나 진지한 사색의 단편이 되어주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에릭 오(한국명 오수형)가 그 방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His Chamber'는 샌타모니카 로이스 램버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첫 개인전 타이틀이다. 수채화와 조각 영상물까지 다양한 형식의 작품 50여 점이 그의 방을 채우고 있다.

"따로 전시를 해야겠단 생각으로 그린 그림들은 아니에요. 3~4년 정도 일기 형식으로 꾸준히 해 온 작품들이죠. 그동안의 기록과 정리들이기도 하고요."



그는 '토이 스토리'나 '카'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픽사의 애니메이터다. '회사원'으로 하루종일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씨름하기도 벅차겠지만 그는 한 번도 개인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엄청난 열정이다.

"사람들이 '미친 것 아니냐?'라고 해요. 사실 미친 것 같기도 해요. (웃음) 하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작품을 통해 제 자신과 만나왔기 때문에 그게 결여되면 못 살겠더라고요. 그냥 하루에 1시간만 스스로에게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매일 자기 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끼적이듯 그려온 것 뿐입니다."

그래서일까.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에서 에릭 오가 보이고 그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잖아요.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내가 있고 그와는 다른 진정한 내가 있죠. 그림을 그리면서 제 안 어디선가 웅크리고 있는 진정한 나에게 툭툭 대화를 던져봤어요."

하지만 그의 작품이 한 개인의 자기 표현에서 머무는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보편성도 지녔다. 가만히 서 감상하다 보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될 정도다.

상징물들도 많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구태여 의미들을 숨겨놓지 않았다. 작품의 제목과 이미지 속에서 그 상징성이 읽히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이 전달된다.

"상징물을 좋아해요. 숨겨놓은 의미들이 많죠. 나비는 부활 나무는 생명 혹은 삶 해와 달은 소중한 것들 별은 그와 반대되는 부정적인 것들 심장은 항상 추구해야 할 가치 사과는 유혹이나 아직 정의하지 못한 가치 등을 뜻해요. 하지만 저의 메시지들이 명확하다고 해서 보는 분들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그에게 있어 자기 표현이 어떤 매체 어떤 재료의 힘을 빌렸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만 있으면 된다. 서울대 서양학과에 다니다 졸업 무렵 애니메이션에 매료돼 UCLA로 건너와 새로운 세계에 도전 기어이 픽사에까지 입사한 그의 화려한 이력도 어느 정도는 에릭 오의 스타일을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포맷이나 기법 같은 것에 연연하지는 않아요. 아이디어나 이야기가 떠오르면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뭐가 제일 적합할까 생각하는 것이죠. 점 하나가 됐더라도 그게 제가 하고자 하는 바에 가장 가깝겠다 하면 그렇게 합니다."

사실 그의 작품세계는 이미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아 왔다. 다양한 작품이 안시 히로시마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SIGGRAPH 학생 아카데미 어워드 아니마 문디 SICAF 등의 국제 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고 SBS 서울 창작 애니메이션 대상 필름 스토리 영화제 대상 옥스포드 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 상 등 유수의 상도 휩쓸어 왔다.

"제 모든 작품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그래서 한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그런 부분을 같이 공감해주시는 게 아닐까요? 또 더 눈에 띄기 위해 경쟁적으로 치닫기만 하는 예술의 세계와 이미지의 폭풍 속에서 어떻게 해야 질리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수 있을까 궁리하는 저의 고민을 알아봐 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에게는 '꿈의 직장'이라 할 만한 픽사가 에릭 오를 알아본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특히나 그를 스토리 아티스트가 아닌 애니메이터로 발탁한 데에도 픽사만의 통찰력이 느껴진다.

"입사할 때만 해도 3D 애니메이션 쪽 경험이 전무했어요. 기술적으로도 부족하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저에게 있는 다른 면을 보고 애니메이터로 뽑아 주신 것 같아요. 픽사에서 애니메이터라면 '연기자'의 역할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아요. 또 개인적인 작품활동과 뚜렷이 경계를 짓고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이라 맘이 편하기도 하고요."

멈춤 없는 그의 행보는 올 해도 계속된다. 하반기에도 일정이 빡빡하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다시 한번 단편이 출품돼 프랑스를 방문하게 됐고 여름엔 픽사의 신작 '브레이브' 개봉 때문에 바쁘다. 12월엔 뉴욕에서도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벌써 이룬 게 많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궁극적으로는 '감독'이 아닌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냥 에릭 오라는 사람의 브랜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살바도르 달리나 팀 버튼의 작품이 그렇듯 곳곳에 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스며들어서 그 디자인만 봐도 '이건 에릭 오다'라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을 하고 싶습니다."

에릭 오의 개인전 'His Chamber'는 오는 7월 15일까지 샌타모니카 로이스 램버트 갤러리(2525 Michigan Ave. E-3 Santa Monica)에서 계속된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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