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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아메리칸 드림의 새로운 정의

최상태/기획취재팀 차장

얼마전 세계은행 수장에 선출된 김용 총재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용 총재가 하버드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일화다. 2007년 마돈나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말라위를 방문했다. 의료구호 활동 중이던 당시 김 교수를 만나서 물었다.

"교수님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나요?"

"글쎄요 작은 승리들이 쌓이면 큰 즐거움을 얻는 게 인생 아닐까요.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빛나게 하는 것은 작은 실천이지요."

이 대답에 감명을 받은 마돈나는 이후 말라위에서 아이들을 입양했고 여학교와 자선기관을 설립했다. 김용 총재가 가난한 나라에 막대한 돈을 배분하는 중책을 맡은 것은 그가 하버드 의대 출신의 의사여서가 아니었다. 국제구호단체 리더와 다트머스대 총장을 거치는 동안 봉사를 향한 그의 일관된 행보가 그 자리에 오르게 만든 것이다.



김용 총재는 다트머스대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4개의 P 즉 열정(Passion)과 끈기(Persistence) 갈망(Pursuit) 글로벌 마인드(Planet)를 인재의 조건으로 강조했다. 그 역시 이 말에 맞는 삶을 살면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이르렀다.

요즘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개념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1950~60년대 이 용어는 손에 잡힐 만큼 명확했다.

교외지역에 울타리가 쳐진 방 3개 짜리 단독주택과 애완견 자동차 2대를 갖고 있으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는 말을 들었다. 이는 중산층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했고 피부 색깔이 다르고 이민자라도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보증 수표가 되었다.

이런 공식이 깨진지는 오래다. 2012년 다시 아메리칸 드림을 묻는다면 몇 개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진다. 게다가 삶의 환경은 상대적으로 척박해졌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제조업이 탈출한 뒤 금융과 서비스로 버텨오던 미국경제는 리만 브라더스 파산으로 휘청했다. 이후 금융위기 여파로 장기 불황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대학 졸업자들은 학자금 융자를 갚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었고 신혼부부의 내집 장만은 점점 멀게만 다가오고 있다.

불평등을 상징하는 단어로 치부되던 아메리칸 드림이 요즘 다시 한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다. 반기문 UN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한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세계적인 리더로 성장한 데는 '봉사'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한인들도 예전처럼 내 가족만 잘 사는데서 벗어나 남을 위한 봉사에 가치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중고교 시절부터 동남아나 아프리카 지역으로 자녀를 보내 봉사를 하게 하는 부모들도 부쩍 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제는 개인 뿐만 아니라 한인 기업들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 회사만의 성장에서 눈을 돌려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혜는 주류사회뿐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에도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봉사가 아메리칸 드림의 새로운 정의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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