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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인터뷰> ‘초신 퓨’ SD북부지부 이사 진 화이트씨

"한국전 장진호 전투 못잊어…한인들과 교류 시작"
40여명 참전용사 매월 만남
흥남철수작전때 피난민 도와
생애에 가장 큰 자부심 회고

“우리는 지난 60여 년 동안 단 한시도 한국전쟁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한반도에 관한 소식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관심을 기울이지요. 또한 한국을 방문해 눈부신 발전상을 확인하면서 감격에 겨워하곤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여했던 은퇴 해병 진 화이트씨(사진)는 ‘초신 퓨’(The Chosin Few) 샌디에이고 북부지부의 이사다.
‘초신’은 ‘장진’을 당시 지도에 사용됐던 대로 일본식으로 읽은 것으로 ‘초신 퓨’는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라는 의미다. 80년대 결성된 이 단체는 미 전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샌디에이고 북부지부는 91년에 창설됐다. 현재 40여명의 생존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매월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미군의 전사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있는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6일부터 12월13일까지 미 해병대 1사단이 개마고원의 장진호에서 작전을 펼치다 개입한 15만 명의 중공군에 포위돼 전멸위기까지 갔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때 겪은 부상으로 평생을 고생하고 있는 화이트씨도 “동상이 얼마나 심했는지 아직까지도 발에 피가 잘 통하지 않아 고통스럽다. 특히 당시 최대의 적이었던 혹한 속의 전투는 200명이었던 우리 중대원 중 16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회상한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는 대낮에도 영하 20도로 떨어져 발과 양말 사이에 얇은 얼음막이 생길 지경이었고 부상자를 위한 수혈관이나 모르핀도 얼 정도의 강추위였다.
이 엄청난 혹한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사투를 벌이며 퇴각하는 동안 그들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동행자들이 있었다. “장진호에서 후퇴할 때, 9만8000여명의 북한 피난민들이 우리와 함께 했다. 결국 장진호 전투와 함께 전사에 기록돼 있는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이들을 무사히 남쪽으로 철수시켰고 이는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큰 자부심이자 보람이었다”고 화이트씨는 회고했다.

이것이 바로 화이트씨가 한인커뮤니티를 두드린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 중 누구라도 한번 만나볼 수 있다면 우리에겐 의미가 클 것”이라는 것이다.
창설된 지 20여년이 지나도록 한인커뮤니티와는 소통이 거의 없었다는 이 단체는 최근에야 몇몇의 한인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올해 초 미국인 남편과 함께 단체를 찾은 스텔라 홍 콜드웰씨는 “우연히 모임에서 초신 퓨 회원 한분을 만난게 계기“라며 ”한국전에 참전해 준 것이 고마워 월례 모임에 찾아가 감사인사를 전한 게 전부였지만 모두들 너무 반겨하셔서 시간이 되는 한 자주 참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초신 퓨 활동뿐 아니라 재향군인병원 등에서 참전군인들을 위해 봉사를 펼치고 있는 화이트씨는 “한국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큰 우정을 느끼곤 한다“며 ”우리 회원들의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더 늦기전에 그때 그들 중 누구라도 반드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고 염원했다.

▷연락처:(760)727-7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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