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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매달 60만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이종호/논설위원

한인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2박3일 샌프란시스코.레드우드 주립공원 코스였다. 다른 곳을 여행을 할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다 보니 여행을 다녀와도 주야장천 차만 타고 달렸다는 기억만 남을 때가 많다. 이번 여행도 다르지 않았다.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의 여행길 그나마 지루함을 달래준 것은 가이드의 구수한 입담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암벡스 벤처 이종문 회장의 이야기였다. 샌프란시스코 한 복판에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자랑스럽게 서 있다는 것인데 스토리는 이렇다.

한국 굴지의 제약회사인 종근당 창립자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1970년 도미 후 1982년 실리콘밸리에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시스템'이라는 컴퓨터 그래픽카드 회사를 세운다. 55세에 청년 벤처신화를 일군 것이다. IBM과 애플컴퓨터의 호환시스템을 개발한 이 회사는 1993년엔 실리콘밸리 내 고속성장 기업 8위에 오를 만큼 주목을 받는다. 이후 이 회장은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켜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다시 벤처캐피털을 설립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69세 때였다.

그런 과정 중에 1999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 내 한국관이 예산부족으로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회장은 1500만 달러를 기부했고 이는 전 시민이 참여한 '박물관 살리기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시는 박물관을 새로 건립했고 이 회장의 이름을 따서 '종문 리 아시아예술문화센터'로 명명했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이름을 딴 대도시 박물관으로는 처음이다.



이쯤 듣고 나면 모두가 가슴 뿌듯해 한다. 그러나 가이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 강연회에서 누군가가 이종문 회장에게 물었다. "회장님은 한 달에 얼마나 버십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얼마를 버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매달 60만 달러는 꼭 벌어야 합니다. 매달 기부하기로 한 돈이 이곳 저곳 합해서 60만 달러는 되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만큼 이 회장이 많은 기부를 한다는 말일 터이니. 어쨌든 한 명 한인 사업가의 통 큰 기부 이야기는 수많은 한인들의 자긍심을 한껏 살려놓는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돈을 벌면 그처럼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해보겠다는 다짐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날은 아무에게나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낙담은 말자. 형편과 분수에 맞게 기쁜 마음으로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작은 기부라도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가장 큰 비결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선과 봉사는 그렇지가 않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몇 백 달러를 기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작은 호의 또한 귀하고 소중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 밥 한 끼 사는 것 나를 위해 수고한 사람에게 팁 1달러라도 더 건네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윤활유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확실한 자선이요 기부인 것이다.

돈은 그 자체가 주는 행복보다 벌기까지의 과정 혹은 벌고 난 이후 제대로 쓸 줄 아는데서 느끼는 행복감이 훨씬 더 크다고 한다. 이종문 회장 같은 분은 그런 비밀을 일찌감치 터득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달 60만 달러를 기부하는 사람이나 그 만분의 1인 60달러를 남을 위해 쓰는 사람이나 느끼는 행복감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에겐 얼마나 큰 위안이자 축복인가. 그래서 신은 공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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