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오픈 업] 현충원의 오빠와 종북논란

모니카 류/암 방사선과 전문의

큰 오빠 지난 6일은 한국의 현충일이었어. 미국의 현충일은 그전에 5월 28일 월요일에 지났어. 오빠의 '헛무덤'이 있는 동작구 현충원엔 올해 아무도 갈 수 없었어. 새언니는 큰 오빠 있는 곳에 가 있고 오빠의 두 딸들 나를 포함한 남은 형제들도 이젠 한국에 살지 않거든. 오빠의 이름이 새겨진 초라한 오빠의 묘비가 있는 곳은 오빠의 유품을 묻은 곳이래.

오빠랑 우리가 자랐던 후암동 집을 줄여 이사할 때 우리 가족이 제일 힘들어 했던 것이 오빠였어. 혹시나 살아 돌아오면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없으면 어떻게 우리를 찾을 것인가 하고 말이야.

오빠 이거 알아? 오빠는 한국 6.25 전쟁에서 죽은 한국 군인들 14만명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것? 또 32만명이 행방불명됐거나 포로로 끌려 갔고 45만명이 다쳤대. 포로로 끌려 간 사람들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해 보면 정말 끔찍해.

우리 식구들에겐 억울하기만 한 오빠의 죽음이지만 우리나라를 돕는다고 참전했던 미국 영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프랑스 그리스 콜롬비아 타일랜드 에티오피아 네델란드 벨기에 남아공화국 뉴질랜드 노르웨이 룩셈부르그 등의 전사한 젊은이들도 4만명이 넘는대. 오빠같은 외국의 젊은 청년들 15만명이 죽고 다치고 행방불명되고 포로로 끌려가 비참한 삶을 마친거래.



제일 많이 희생된 외국 청년들은 미국 청년들인데 3만7000명이 죽고 9만2000명이 다쳤대. 북한쪽은 소련과 중공이 합세해서 남한과 싸웠는데 150만명이 생명을 잃었대. 죽은 일반 시민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참 엄청나다 그지?

그런데 오빠. 오빠는 왜 전쟁에 나간거야? 난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 많다. 더 김 새는 일은 오빠처럼 전쟁 때 희생되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야. 너무 속상해. 그저 '현충일'이 공휴일이니까 하루 쉬니 좋은 거지 뭐.

이런 사회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래. 미국은 5월 마지막 월요일이 현충일 즉 메모리얼데이인데 연휴거든. 그런데 이 날은 많은 사람들이 놀러가느라 좋고 바빠. 우린 묵념조차 하지 않아.

한국은 6월 6일로 고정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좀 나은가. 이날을 현충일로 정한 것은 전통적 24절기 중 제사를 지내는 '망종' 때를 따라 정해진 것이래.

유럽에서는 11월 11일 11시에 2분 동안 묵념을 하는 나라가 많다고 들었어.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고 2분 동안 묵념을 하는 것은 1차대전 2차대전을 모두 기억하기 위한 것이래.

오빠 오빠의 짧았던 삶이 너무나 아까워. 오빠가 정말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갔다고 치자. 그래도 새언니랑 두 딸들을 대한민국이 먹여 살리거나 공부시키지는 못했어.

한국 정부에서는 현충일엔 현충원 참배를 공식적으로 한대. 지난 60년간 별별 일들이 많았던 한국인데 여러 정당 높은 사람들이 참배하러 가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걱정돼. 왠지 알아? 요즘 한국은 '종북' 논란에 휩싸여 있거든.

오빠 난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전쟁의 가혹한 육체적인 피해 그리고 일생 동안 안고 살아야 하는 만성 정신적인 괴로움과 정신치료의 필요성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어. 내가 의사가 됐거든. 오늘은 이것으로 마칠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