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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약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의대 졸업 후 나는 강원도 원주기독병원에서 2년간 내과 수련의 훈련을 받았다. 모교인 연세대학교처럼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웠고 외국인 의사들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내과 외래로 찾아 오는 결핵과 나병 환자들을 치료할 때도 있었다. 세균에 의해 생긴 병이라는 지식 때문인지 그들은 투약한 대로 약을 잘 복용해 치료의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몸의 일부인 두뇌의 질환인 간질(Epilepsy) 환자들은 병을 숨겼다. 간질이란 두뇌에서 발생되는 전류파장에 이상이 생겨 몸 전체나 일부분이 경기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원인은 잘 모르지만 대부분 가족력이 있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내과의사인 R선교사는 자신의 트럭에 환자 진료서와 각종 간질약들을 싣고서 일년에 한번씩 강원도 산골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방문했다. 간질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복용할 약을 건네주며 "매일 드시면 간질이 예방됩니다!"라는 그의 간곡한 부탁을 우리말로 통역하는 것이 내과 초년생인 나의 임무였다.

1970년대 초반 당시 간질치료약은 많이 개발되었고 자신에게 맞는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함으로써 발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때였다. 그런데도 많은 환자의 가족들은 약물 대신 보약을 달여 마시게 했고 귀신 쫓는 굿을 했다. 낯선 서양 약보다는 아마도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치료법이 덜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이와 비슷한 안타까운 현상을 한인 이민가족 중에서 발견하고 아연해 한다. 두뇌의 화학물질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주의산만증이나 조울증을 치료하는 약물에 대한 가족들의 두려움이나 거부현상 때문이다.



잘못된 전기파장에 의한 두뇌 질병이 간질인데 비해 같은 장기인 두뇌의 화학물질 불균형 때문에 오는 병이 주의산만증이나 조울증이다. 이런 정신 질환은 부모와 자식 사이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학교 성적 친구 관계에 부정적 요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큰 손실은 아이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상실이다. 어릴 때 형성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성인기에 들어서서 직장 생활이나 결혼 유지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가정과 학교로부터의 따뜻한 이해와 격려인 환경적 치료 작은 성취라도 발견하여 인정해 주고 용기를 주고 상담해 주는 심리적 치료가 중요하다. 더불어 두뇌의 체질적 원인을 개선하고 조절하여 어린이의 감정과 행동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약물 치료가 필요한데 이는 빠를수록 좋다.

아무리 효과적인 약물이라도 60~ 70%의 효과가 있다면 아주 탁월한 치료제이다. 나머지 30~40%의 환자들은 또 다른 약품을 사용해가면서 부작용이 가장 적고 치료 효과가 높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의사와 함께 탐구해 가야 한다.

요즈음 많은 돈을 들여서 광고하는 과학적 검증도 되지 않은 비주류 치료법들이 높은 비용을 요구하여 부모들의 판단을 혼돈시키는 듯하다. 이런 전문가(?)일수록 "약은 위험하니 절대 쓰지 마세요!"라고 단언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약물의 치료 효과에 대해 얼마나 위협을 느꼈으면 자신들의 비주류 치료법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을 비방하는 것일까? 강원도 산골에서 간질약 대신에 비싼 굿을 했던 부모님들의 마음 약한 선택이 이곳 고도의 문명 속에 살고 있는 한인 이민 가정에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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