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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술꾼의 품격

이종호/논설위원

술 마시기로 치면 한국사람 따라올 민족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엊그제 뉴스에서 또 확인됐다. 영국의 주류전문지 '드링크 인터내셔널'의 조사 결과다. 한국의 진로소주 '참이슬'이 2011년 한 해 동안 6138만 상자가 팔려 12년째 세계 1위를 지켰다 한다. 롯데의 '처음처럼'도 2390만 상자를 팔아 3위를 기록했다.

소주 뿐일까. 독주인 위스키 소비량도 세계 수준급이다. 거기에 막걸리 와인은 물론 일본 술 사케 또한 얼마나 많이들 마셔대는가. 그러고 보면 술에 관한 한 어떤 경고나 경구도 소용이 없어 보인다. 그 많은 음주사고 그 많은 음주후유증에도 술집은 여전히 성업 중이고 그 많은 계몽 그 많은 단속ㆍ처벌에도 술 소비는 늘어만 간다.

적당히 마시는 술은 보약과 다름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적당히'라는 기준이 사람마다 천차만별 다르다는데 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난 이길 수 있어.' 이런 착각 끝에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쏟고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1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음주운전 사고가 단적인 예다.

지난 주말 어떤 모임에서도 음주운전에 적발된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10년을 딱 한 달 남겨놓았는데 안타깝게(?) 또 걸렸다고 했다. 처벌은 가혹하고 처절했다. 벌금과 교육으로 갖다 바친 수천달러의 비용은 그렇다 치고 차량에 의무적으로 달아야 하는 음주측정기는 주홍글씨 이상의 족쇄였다. 고가의 설치비와 매달 사용료까지 부담해야 하는 이 장치는 차를 탈 때마다 호흡을 불어넣어야 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기준치 이상이면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또 주행중이라 해도 매 30분마다 다시 불어 음주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때였다.



그는 이젠 정말 술을 끊어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없다고 했다.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은 한 때 천관이라는 기생에게 빠져 자주 술집을 드나들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크게 꾸짖었다. 깊이 반성한 김유신은 자신을 태운 말이 습관적으로 또 술집 문 앞에 이르자 말의 목을 베어 버렸다. 술을 끊으려면 이 정도의 결단성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겠다.

보통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말해줬다. 맹세는 하지 말라. 대신 스스로를 다스려 보라. 자신의 의지력을 너무 믿어서도 안 된다. 그보다는 의지력을 발휘할 상황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피치 못할 술자리엔 아예 차를 가져가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내 말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이 권하는 방법이다.

술은 유사이래 늘 인간과 함께 해 왔다. 그렇지만 위험하다. 때론 치명적이다. 그래서 지혜롭게 다뤄야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에 순우곤이란 사람이 있었다. 술의 달인인 그에게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는가?"

순우곤이 대답했다. "벼슬에 구품(九品)이 있듯이 술맛에도 구품이 있습니다. 임금이나 손위 사람 앞에서 엎드려 마시는 술이 제일 맛없는 구품이요 공석에서 돌려 마시는 술이 그 다음으로 맛없는 팔품이며 제사나 잔칫집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시는 술이 칠품 술집에서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술은 육품 주점에서 홀로 마시는 술은 오품입니다. 또 집에서 친구와 대작하는 것이 사품이요 집에서 혼자 마시는 독작이 삼품이며 벗과 더불어 좋은 경치를 찾아 나누는 술이 이품 아름다운 풍광 아래 홀로 즐기는 술이 으뜸인 일품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음주 품격은 어디 쯤일까.

곤고한 시절이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무슨 낙으로 사느냐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술 때문에 내 몸 망치고 남에게까지 피해 끼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게 인류 최고의 발명품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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