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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자전거는 정직하다

이종호/논설위원

지난 2월 비록 중고지만 나로서는 꽤 큰 돈을 들여 산악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연초에 내가 나에게 하기로 작정했던 선물이었다.

동호회원들과 함께 서너 번 자전거 산행을 했다. 힘은 들었지만 뿌듯했다. 책상머리에서 느끼지 못했던 땀의 쾌감도 새로웠다. 지금은 손목을 약간 다쳐 뒷산 야트막한 곳이나 혼자 살살 타고 있지만 내게 자전거는 여전히 설레는 자극이다. 산악자전거의 묘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그날이 내게도 언젠가는 오리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기 때문이다.

자전거에 입문하면서 자전거의 전설이 된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다.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도 그 중의 하나다. 1971년생이니 올해 41세다. 텍사스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촉망받던 선수였다. 하지만 스물다섯 한창 나이에 말기 고환암 선고를 받았다. 한 쪽 고환을 잘라내는 등 3년을 암과 싸웠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다시 일어섰다.

세계 최고 권위의 도로자전거 경주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서 1999년부터 7번이나 내리 우승한 것은 그런 다음이었다. 그에겐 황제의 칭호보다 '인간승리'라는 격려가 더 큰 기쁨이었다. 수많은 암 환자들이 무수한 실패자들이 그를 보며 다시 꿈을 꾸었고 그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새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암스트롱이 과거 금지약물 복용혐의로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도핑방지위원회(USADA)가 유력한 증거를 확보하고 조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USADA는 사법권은 없지만 선수의 출장 정지와 수상 취소 고발권을 갖고 있다. 만약 도핑 혐의가 입증되면 암스트롱은 일곱 번의 '투르 드 프랑스'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

전에도 여러 번 조사를 받았던 그였다. 물론 그 때마다 무혐의로 끝이 났다. 이번에도 암스트롱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나는 선수생활 동안 한 번도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으며 500번의 도핑테스트에서 한 번도 적발된 적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갑작스런 조사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제보든 음모든. 하지만 정말 그의 말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위대했던 그의 날들이 하루 아침에 부정되는 일은 차마 없어야겠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미 충분히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최고 스타였던 배리 본즈. 그는 통산 762개의 홈런을 쳐 행크 아론의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기록 755개를 갈아치웠지만 스테로이드 약물복용 의혹으로 대기록은 빛을 잃고 말았다.

자메이카 출신의 캐나다 육상선수 벤 존슨도 그랬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라이벌 칼 루이스를 제치고 100m 금메달을 땄지만 도핑 테스트에 걸려 '인간탄환'의 명성은 한 순간에 날아갔다.

하긴 그들만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금 더 빨리''조금 더 편하게'라는 유혹 앞엔 누구나 쉽게 무너지고 만다. 불법과 타협하고 편법에 편승하며 꼼수에 곧잘 흔들리는 것이 우리들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다.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

산악자전거 몇 번만 타 봐도 알겠다. 정상은 한 바퀴 두 바퀴 땀 흘리며 굴려야 오를 수 있다는 것 가쁜 숨을 참아가며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이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땀은 정직하다. 흘린 만큼만 나아간다. 그것이 자전거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 나온 암스트롱이 몰랐을 리 없다. 인생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그의 결백을 기다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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