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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새로 얻은 나의 딸

모니카류/암 방사선과 전문의

오늘 나는 셋째 딸을 얻었다. 이 아이에 대한 생각은 주말 내내 나를 혼잡스럽게 했다.

나는 이 아이를 만난 적이 없고 사진을 본 적도 없다. 미국 중부 백인들이 밀집해 사는 곳에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열 살 가까이 된 아이다. 오늘 기도 중에 이 아이를 내 아이처럼 영적으로 거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은 이랬다. 몇 년 전 학교 담임선생님은 이 아이의 행동과 반응이 정상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 알게된 이야기지만 입양아를 관리하는 기관은 입양 첫 해엔 몇 번 입양가족을 방문하지만 장기 계획에 따른 확인방문은 1년 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마친다고 한다.

소셜서비스국에서 이 아이가 입양된 가정을 급습했을 때 아이는 장난감은 커녕 책상도 침대도 없이 방바닥에 깔린 매트레스 뿐인 공간에서 감금되다시피 살고 있었다고 한다. 또 아이의 양아버지는 성적(性的) 해소의 도구로 아이를 학대해 왔다고 한다. 양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것이 더 충격을 주었다.



놀랍게도 법은 이들에게 너무 관대해 양부모는 겨우 3년의 감옥형을 받았을 뿐이다. 이야말로 미국판'도가니'가 아니고 무엇이랴. 더욱 한심했던 일은 이 아이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 보내 파양하라는 법의 해석이었다. 도대체 입양아가 물건이란 말인가.

이런 아픈 사례와 달리 세상에는 성공적인 입양 사례도 많다. 그들이 만들어 온 삶의 이야기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얼마 전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한국 입양아 출신 여성 플뢰르 펠르랭(한국명 김종숙)을 중소기업 디지털 경제장관으로 발탁했다는 이야기가 그랬다.

고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고아를 만든 것은 전쟁이었다. 현대 역사에서는 두 번의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 전쟁과 크로아티아 전쟁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뢰르 펠르랭은 나이로 보았을 때 전쟁고아는 아니었던 것 같다.

2000년 미국 센서스에 의하면 18세 미만의 어린이 중에 2.5%에 달하는 200만명이 입양된 아이들이었고 이것의 두 배 정도 되는 440만 명이 양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한국은 6.25 전쟁이 휴전 된 1953년부터 2001년 사이에 15만명의 고아를 외국으로 입양시켰고 이것의 반이 채 못되는 6만 2000명의 어린이가 자국민에게 입양되었다고 한다. 미군 병사들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은 거의 대다수가 미국으로 왔다. 1953년 전후에 입양된 입양아라면 지금 55세에서 59세가 되었을 것이다.

플뢰르 펠르랭의 성장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나는 아시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특별히 한국에 대한 감정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녀도 상처로 인한 아픔과 치유의 시기를 지났을 것이다.

나의 셋째 딸도 아픔을 이기고 꽃처럼 활짝 피어나 '나는 세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치유의 그날이 어서 오기 바란다.

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각자의 신에게 이 아이를 위해서 아니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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