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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억울한 사연과 소통의 부재

[LA중앙일보] 발행 2012/06/25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2012/06/24 15:38

구혜영 / 사회팀 기자

억울하다는 감정은 복잡하다.

영어로 번역하면 우울(Depression)과 압박(Oppression) 중간 정도의 의미지만 그 속엔 단어가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무기력함과 저항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특히 억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의 떨림이나 표정은 힘이 세다.

생각해보면 '억울하다'는 말은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의 70%는 "억울한 일이 있어 답답하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밖에 나가 기자라는 게 밝혀지면 "억울해 죽겠으니 신문에 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 나조차도 기삿거리가 없을 땐 억울했던 일 억울한 일 억울할 일을 찾는다. 억울하다는 말 속엔 꼭 들어줘야 한다는 절실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거다.

다만 안타까운 건 모두의 억울함을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힘들게 꺼낸 말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힘드시죠?"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에는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독자에게 "경찰에 먼저 신고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20분이나 듣고만 있었다. 전화를 끊을 틈만 찾고 있던 찰나 그는 "오랫동안 긴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며 "억울함이 조금 풀린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억울함이란 것은 들어주는 이가 없을 때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지난 12일 엘세군도 지역 LAN항공사 지점 앞에 모인 한인들은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공사의 허위신고로 인해 LA공항경찰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박숙정(50ㆍ한국 거주)씨는 곤봉에 맞아 피멍 든 몸과 부러진 손가락 등을 확대한 사진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박씨에 따르면 화장실 사용을 부탁한 그는 착륙 준비중이니 '5분만 기다리라' '2분만 더 참아라'라는 승무원의 지시에 20분간 기다렸다. 5차례에 걸쳐서 '(앞서 다른 두 명이 화장실을 쓴 후) 지금 가도 괜찮으냐'고 물었다는 것. 그는 "얼마나 억울했으면 한국-미국을 오가며 항의하겠느냐"며 "만약 내게 무슨 잘못이 있었다 해도 경찰은 몸수색.연행.매질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그날의 모임은 항의서한을 받지 않겠다는 항공사 측의 거부로 마무리됐다. 기꺼이 피켓을 들고 나와 박씨와 함께 싸운 한인들을 보며 정(情)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상대 측과 소통할 구멍이 없다는 것도 재차 확인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고객의 항의서한을 거절하고 전화를 통한 접촉을 일체 차단한 항공사 측의 태도는 공공연한 귀막음이다. 또 듣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는 것은 무책임이다.

더 큰 목소리 더욱 견고한 의견을 내지 않으면 항공사나 LA공항경찰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문제든 듣는 일이 최우선이다. 해결이나 갈등은 듣고 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않다. 오히려 듣고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고 본다. 한인(恨人)의 억울함은 듣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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